“저비용 세트처럼 사용”…황폐화된 시리아에, 中 영화인들 몰리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9일 15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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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시리아 남부 하자르 알아스와드에서 영화 ‘고향작전(家園行動)’을 촬영 중인 중국 쑹인시 (宋胤熹·오른쪽) 감독이 모니터 앞에서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사진 출처 쑹인시 인스타그램
지난달 25일 시리아 남부 하자르 알아스와드에서 영화 ‘고향작전(家園行動)’을 촬영 중인 중국 쑹인시 (宋胤熹·오른쪽) 감독이 모니터 앞에서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사진 출처 쑹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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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황폐화된 시리아 도시가 영화 촬영장이 됐다. 촬영 세트를 지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 이런 지역을 ‘저비용 세트’처럼 쓰는 것이다.”

시리아 남부 하자르 알아스와드에서 중국 영화를 촬영 중인 현지 감독 라와드 샤힌이 지난달 AFP통신에 한 말이다. 샤힌이 찍는 영화는 홍콩 스타 청룽(성룡)이 제작하는 영화 ‘고향작전(家園行動)’.

10년째 이어지는 내전으로 폐허가 됐지만 복구는 꿈도 못 꾸는 시리아 도시에 해외 영화 제작팀이 밀려오고 있다. 시리아 독재 정권에 협력하는 중국 이란 러시아 촬영팀이 대부분이다.

5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고향작전 제작진은 지난달 시리아 현지 촬영을 시작했다. 고향작전은 2015년 예멘 내전 당시 중국 외교관들이 중국인과 외국인을 데리고 예멘을 탈출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다. 영화 배경은 예멘이지만 촬영은 시리아에서 하고 있다. 고향작전 관계자는 FT에 “예멘보다 시리아가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영화 ‘고향작전(家園行動)’ 발표회에서 제작을 맡은 청룽과 감독 쑹인시(오른쪽부터) 등이 박수치고 있다. 사진 출처 쑹인시 인스타그램
지난해 7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영화 ‘고향작전(家園行動)’ 발표회에서 제작을 맡은 청룽과 감독 쑹인시(오른쪽부터) 등이 박수치고 있다. 사진 출처 쑹인시 인스타그램


그러나 FT는 “중국 영화를 시리아에서 찍는 이유는 두 국가의 외교 관계 때문으로 보인다”며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중국과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알아사드 가문은 1970년부터 아버지와 아들이 연이어 집권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은 알아사드 독재 정권의 내전 중 화학무기 사용 등을 이유로 시리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한때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액션 스타 청룽은 이제 대표적인 친중(親中) 인사로 통한다. 청룽은 홍콩 반환 25주년이던 지난달 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시물을 올려 “중국인임이 자랑스럽다. 중국의 번영, 안전, 영원한 평화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베이징 행사에서 “공산당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고향작전에는 리자오싱(李肇星) 전 중국 외교부장과 고위 공산당원인 원로 예술가 톈화(田華)가 자문으로 참여한다.

지난달 17일 시리아 남부 하자르 알아스와드에서 영화 고향작전(家園行動) 감독 쑹인시가 뼈대만 남은 건물들을 내려다보며 말하고 있다. 사진 출처 쑹인시 인스타그램
지난달 17일 시리아 남부 하자르 알아스와드에서 영화 고향작전(家園行動) 감독 쑹인시가 뼈대만 남은 건물들을 내려다보며 말하고 있다. 사진 출처 쑹인시 인스타그램


고향작전을 찍고 있는 하자르 알아스와드는 시리아 혼란상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도시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불과 4km 떨어져 있으나 평균소득은 전국 하위권이다. 주민 대부분이 시리아 내전과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점령으로 떠밀려온 시리아 자국 난민이다. 2012년 시작된 내전 초반에는 반군 중심지였으나 2015년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에 점령당했다. 2018년 정부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탈환했지만 도시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거주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도시 복구 작업도 매우 더딘 상황이다. 하자르 알아스와드에 살던 압달라 씨(25)는 “우리 동네에 나도 아직 돌아가지 못했는데 영화를 촬영한다니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FT는 “반군 중심지였던 지역은 재건하지 않는다는 시리아 정부 정책 때문에 하자르 알아스와드가 폐허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영화 촬영이 잇따르자 시리아 영화인들은 “영화적 약탈”이라며 비판 성명을 냈다. 영화인들은 성명에서 “얼마 전까지 전쟁 범죄가 일어났고 인류에 대한 범죄가 여전히 벌어지는 장소”라면서 “도시의 기억을 무시하며 영화 촬영진이 들이닥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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