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총격에 갈린 남매의 생사 “오빠가 성적우수상 받던 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1일 14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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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주 초등학교 총기 난사사건으로 사망한 초등학교 4학년 호세 플로레스(10). 트위터 캡처
텍사스주 초등학교 총기 난사사건으로 사망한 초등학교 4학년 호세 플로레스(10). 트위터 캡처
미국 사회를 슬픔에 빠뜨린 텍사스주 유밸디 롭 초등학교 총기 난사사건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도 언론을 통해 잇달아 전해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사건이 벌어진 초교에 재학 중이던 남매의 생사(生死)가 엇갈린 사연을 3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 24일 오전 호세 플로레스(10)와 안드레아 헤레라(9) 남매는 여느 날처럼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4학년에 재학 중인 두 사람은 각자의 교실로 가기 전에 “잘가, 이따 보자”며 약속처럼 작별 인사를 건냈다. 오빠 호세의 교실은 111호, 동생 안드레아는 104호였다.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

경찰이 꿈이었던 호세는 원래 5학년 나이지만 읽기와 수학 과목의 성적이 좋지 못해 1년 유급했다. 때문에 동생과 같은 학년이었다. 호세는 잘 웃고 농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호세를 ‘베이비 호세’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호세와 안드레아는 남매이지만 서로 성(姓)이 달랐다.

호세의 아버지인 호세 마누엘 플로레스는 스무 살 때 지금의 아내 신시아 헤레라를 만났다. 당시 스물 세 살이었던 헤레라는 딸 안드레아를 혼자 키우고 있던 미혼모였다. 플로레스도 아들 호세를 혼자 키우고 있었다. 플로레스는 헤레라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만난지 얼마 뒤 플로레스는 헤레라를 상징하는 문신을 자신의 왼팔 가득히 새겼다.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고 이후 아들 둘을 더 낳았다. 호세와 안드레아는 5살 남동생과 생후 7개월 된 막내를 잘 돌보며 화기애애하게 지냈다. 사남매의 집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이웃들도 남매들을 귀여워했다.

총격 당일, 호세는 부족한 성적을 따라잡기 위해 그간 열심히 공부한 결실로 성적 우수상을 받았다. 그간 부모님은 호세에게 “5학년에 진급하고 경찰이 되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독려했고 호세는 많은 시간을 읽기, 수학 공부에 할애했다. 그 결과 이날 호세는 교실에서 상장을 들고 웃으며 기념촬영을 할 수 있었다. 하늘색 티셔츠, 회색 반바지와 조던 농구화, 짧게 깎은 까까머리의 호세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성적 우수상이 들려 있었다. 그의 마지막 사진이었다.

몇 시간 뒤, 18살 고교생 샐버도어 라모스가 돌격용 소총을 들고 롭 초교로 들어갔다. 그는 111호, 112호 교실로 가서 총을 난사했다.

111호 교실에 있던 호세는 총을 맞고 숨졌다. 그의 시신을 살핀 의사는 “머리를 포함해 총 세 군데 총을 맞았다”고 가족들에게 전했다. 경찰은 마침 사건 당일 찍은 사진에서 호세가 입고 있었던 옷과 시신의 옷이 똑같아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104호 교실에 있던 동생 안드레아는 총격 소리를 듣고 창문을 통해 탈출해 살아남았다.

트위터 캡처
트위터 캡처
호세의 부모는 아이의 시신을 안치할 ‘작은 관’의 디자인을 직접 결정했다. 호세가 천사의 날개를 달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마치 영화 포스터처럼 관에 그려넣었다. 관에 넣을 유품으로는 호세가 아꼈던 야구배트, 글러브가 결정됐다. 호세가 입을 ‘마지막 옷’은 그가 좋아했던 티셔츠, 농구 유니폼 반바지였다.

아버지 플로레스는 아들을 기리기 위해 집안에 작은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호세의 아기적 사진, 농구 유니폼, 꽃, 즐겨 먹던 과자, 촛불, 호세가 생모(生母)와 함께 찍었던 사진 등을 놔뒀다. 플로레스는 “아들은 늘 껌처럼 내 옆에 꼭 붙어 다녔다”고 말했다. 호세의 죽음을 전해들은 이웃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호세의 집에 모여들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파란색 옷을 입었다. 파란색은 호세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색깔이다.

가족들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호세보다 한 살 어리지만 키는 더 컸던 동생 안드레아는 “오빠가 그립다”고 말했다. 셋째 동생은 큰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고열에 시달렸다. 호세가 쓰던 방에는 여전히 호세의 침대와 이불, 인형들이 남아있다. 엄마 헤레라는 “이 집에는 이제 아픈 기억이 너무 많다. 집에 들어오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안드레아마저 탈출하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는 두 자녀의 장례식을 치르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세의 가족과 이웃들은 다음달 1일 모여 호세의 장례식을 열 예정이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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