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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美주지사, 선물-편지 공세에 호텔까지 잡고 기다렸다…그는 ‘현대차 정의선’

입력 2022-05-24 13:26업데이트 2022-05-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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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22일 오전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환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2.5.22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올 2월의 어느 날 밤 미국 조지아주 항구도시 서배너의 한 특급 호텔.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와 그의 보좌진들이 이곳 회의실에 틀어박혀 몇 시간째 회의를 거듭했다. 이들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전기차공장 후보지 실사 방문을 하루 앞두고 부지 근처에 호텔방을 잡은 채 초조하게 대기 중이었다. 한 보좌진은 공장 유치 성공 여부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켐프 주지사가 그를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조지아주 현지 언론인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AJC)은 23일(현지 시간) 소식통들을 인용해 조지아주의 현대차 공장 유치와 관련된 뒷얘기들을 보도했다. 유치 과정 내내 비밀스러운 협상이 초조하게 계속됐고, 테네시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다른 주들과의 경쟁도 매우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중이던 21일 조지아주에 6조30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30만 대 생산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조지아주는 다른 주들과의 열띤 유치 경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현대차에 오래 전부터 각별한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켐프 주지사는 2019년 취임 직후 첫 해외 순방지로 한국을 택했다. 그는 당시 일정 중 하루를 투자해 기아차를 방문하고 당시 총괄 수석부회장이었던 정 회장과 고급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2019년 기아차 공장 양산 10주년 행사에서도 그는 정 회장에게 값진 선물을 건넸고 정 회장이 2020년 그룹 회장으로 승진했을 때는 바로 축하 편지를 보냈다.

주정부 공무원들의 노력도 대단했다. 팻 윌슨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은 “최근 몇 년 간 한국을 10번쯤 방문했고 그때마다 현대차 경영진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반대로 현대차 관계자가 서배너를 세 번 찾았을 때는 윌슨 장관이 모든 질문에 능숙히 답하면서 현대차의 우려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고 한다. 해외 기업과 일자리 유치하기 위한 조지아주 공무원들의 열성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2019년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유치할 때도 조지아 주정부는 SK 측 제안에 새벽에도 번개같이 일처리를 하는 적극성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조지아주는 이번 현대차 공장 유치를 위해서도 세제 혜택 등 다른 주들이 공통으로 내놓는 인센티브 외에 공무원들의 기업 친화적인 태도를 적극 어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아 정치권도 초당적으로 공장 유치에 협력했다. 민주당 소속인 존 오소프 상원의원은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아 정 회장과 회동하는 등 공화당 소속인 켐프 주지사의 투자 유치를 측면 지원했다. 조지아주의 이런 절실함은 2006년 기아차 공장을 유치한 이후 최근까지 해외 기업 유치에 몇 차례 고배를 마신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아팠던 것은 2015년 볼보 공장을 막판에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빼앗긴 것이었다.

조지아주와 현대차그룹의 공장 유치 협상은 지난해 12월 시작됐다. 협상은 기밀 유출을 우려해 ‘현대차’라는 이름을 주정부 직원들에게도 노출하지 않은 채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됐다. 더욱이 해당 부지는 주정부가 매입한 토지였기 때문에 부동산 중개업체나 다른 토지 소유주들이 개입되지 않아 비밀 협상을 하는 데도 용이했다. 이런 편안한 분위기에서 양측의 대화가 오가면서 협상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2월 정 회장이 전세기로 공장 부지를 방문했을 때였다. 켐프 주지사를 비롯한 관련 공무원들은 정 회장의 도착 전날부터 서배너 호텔에 진을 치며 대비했다. 당시 조지아주의 유치 가능성이 높다는 내부의 평가가 나왔지만 조지아주 당국자들은 자만과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써 노력했다고 한다. 이후 4월 현대차는 투자의향서를 조지아주에 제출해 사실상 부지 선정을 마무리했다. 당시 켐프 주지사와 보좌진들은 한데 모여 이를 자축했고, 트레이 킬패트릭 주지사 비서실장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대박’(boom)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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