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국제

남은 기독교인은 3명뿐…90세 할머니는 공동묘지서 홀로 예배 드렸다

입력 2022-01-24 15:38업데이트 2022-01-24 16:01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기독교인이라면 으레 교회에서 맞이할 크리스마스. 하지만 시리아 도시 이들립에 사는 기독교도 미셸 부트로스 알지스리 씨(90)의 발길은 인근 기독교 공동묘지로 향했다. 그리고 홀로 예배를 드렸다. 그리스정교회 신자인 알지스리 씨는 이 도시에 남은 기독교인 3명 중 한 명이다. 교회가 문을 닫은 도시에서 가족도, 친구도 남지 않은 그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의 탄생을 조용히 기린 것이다.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시리아 내전으로 뒤틀린 알지스리 씨의 삶을 조명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던 땅이 내전으로 억압과 슬픔이 가득한 공간이 됐다.

알지스리 씨가 기억하는 고향 이들립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그리스정교회 신자였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알지스리 씨 역시 자연스레 기독교인으로 성장했다. 도시에는 기독교 공동체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교회 근처 광장에 거대한 트리가 세워져 기독교를 믿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 아이들까지 선물을 받으러 몰려들곤 했다. 기독교인들은 이슬람교도 이웃을 집으로 초대해 크리스마스 만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기독교인은 종교적으로 음주가 금지된 이슬람교도에게 몰래 술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약 30년간 독재한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과 그를 이어받은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를 지배하던 시절 이야기다. 이슬람교의 땅으로만 알려진 시리아에서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함께 살았었다.

하지만 2011년 시작된 내전은 시리아에 사는 기독교인 공동체를 처참히 파괴했다. 이슬람교 색채가 짙은 반군이 이들립을 점령한다는 소문이 돌자 이곳에 살던 1200명에 달하던 이들립 거주 기독교인들은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곧 이어 이들립을 점령한 반군은 기독교 색채를 드러내는 것을 금지했다. 반군은 기독교인들의 집과 운영하던 상점을 차지했다. 내전이 시작되기 전 시리아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던 시리아 거주 기독교인들은 현재 5% 정도라고 NYT는 전했다.

이들립은 여전히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라 이 같은 상황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알지스리 씨의 방엔 히터가 있지만 연료가 없어 킬 수 없고, TV가 있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사용할 수 없다. 형제자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생은 미국에 있다는 것 같지만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차로 1시간 가량 거리에 조카들이 살지만 반군과 정부군이 대치하고 있는 지역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알지스리 씨는 아예 고향을 떠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여기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우리는 모두 형제”라고 NYT에 말했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국제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