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맞은 사람만…” 美 백신여권 확산에 ‘자유 침해’ 논란 격화

유재동 뉴욕 특파원 입력 2021-09-09 03:00수정 2021-09-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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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명 레스토랑 ‘카츠 델리카트슨’의 종업원(왼쪽)이 입장하려는 고객들을 상대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를 확인하고 있다. 뉴욕시는 지난달 16일부터 식당 헬스장 등 실내 시설에서 백신 접종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13일부터 이를 지키지 않는 업소를 단속하기로 했다. 뉴욕=AP 뉴시스
유재동 뉴욕 특파원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일본 라면집을 찾았다. 유리문에 ‘12세 이상 손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안내문이 보였다. 손님들은 모두 직원 요구에 따라 스마트폰에 있는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했다. 대부분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이었지만 간혹 미접종자도 보였다. 직원들은 미접종자를 식당 바깥의 야외 좌석으로 안내했다.》

종업원 해나 씨는 “처음에는 손님들의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손님은 당황한 기색이었고 또 다른 손님은 다소 반발했다”고 알려줬다. 일부 고객의 항의에도 대다수가 음식점 안에서 안전하게 식사를 하려면 접종 증명서 요구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인근의 유명 식당 ‘카츠 델리카트슨’ 역시 줄 서서 입장하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접종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고객들 또한 직원의 백신 증명 요구에 별다른 불만 없이 응하는 모습이었다.

곳곳에서 ‘백신여권’ 확대

뉴욕시는 지난달 16일부터 음식점을 비롯해 극장, 술집, 공연장, 박물관, 스포츠 경기장 등 실내 시설에 입장할 경우 백신 접종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약 한 달의 계도 기간을 거쳐 13일부터 정식으로 시행된다. 이때부터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손님을 실내로 들였다가 적발되면 업주가 벌금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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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기간이라 현재 일부 시설만 자발적으로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다음 주부터는 곳곳에서 접종 여부 확인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에 내려받을 수 있는 모바일 백신 증명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행하는 종이 증명서가 운전면허증과 마찬가지로 외출할 때 필수적으로 챙겨야 할 신분증이 된 것이다.

미 전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는 지난달 20일부터 식당과 헬스장, 술집, 여가 시설 등에 입장할 때 백신 접종 사실을 증명하도록 했다. 하와이주 호놀룰루 역시 이달 13일부터 실내 시설에 입장할 때 백신 접종 증명서나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내야 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시카고에서는 백신 대신 실내 시설 마스크 의무화 조치를 시행 중이다. 가령 식당에서도 음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백신을 맞았는지와 관계없이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도 지난달부터 술집과 식당, 헬스장 등에 들어갈 때 백신 접종 또는 음성 확인 증명서를 내야 한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는 아직 백신 의무화를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식당과 공연장 등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접종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주요 기업 또한 사무실에 복귀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요구하는 조치들을 잇따라 발표했다. 경제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블랙록 등 금융사, AT&T 시스코시스템스 맥도널드 월마트 등이 모두 내근 직원의 백신 접종을 요구하고 있다.

의무화 반발 시위·소송 난무


이런 조치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뉴욕 브루클린의 ‘로코’ 식당은 지난달 시가 백신 의무화를 발표하자 불복하는 공지문을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내용은 ‘성별, 인종, 나이, 백신 접종 여부 등으로 고객을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손님을 환영한다’였다. 당시 식당 주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백신 의무화는 미국적이지 않은 조치라고 생각했다”며 당국 단속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개인 자유를 중시하고 각종 차별에 민감한 미국인 입장에서는 당국의 일률적인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식당 업주들 또한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백신 의무화 대상에 종업원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육체노동에 시달리느니 두둑한 실업급여를 받겠다’는 종업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일을 그만두는 직원들이 늘어나 일손 부족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필리페 마수드 씨는 CNBC방송에 “접종을 원치 않는 직원 두어 명이 그만뒀다.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 회복 조짐 등으로 현재 미국에서는 직장을 그만둬도 다른 곳에 취업하는 게 어렵지 않아 회사나 업주가 백신을 강요하면 이직을 선택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가 공동으로 백신 미접종 근로자를 대상으로 ‘회사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42%의 응답자는 “직장을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35%는 “의료·종교적 이유로 예외 인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백신을 맞겠다”는 답은 16%에 불과했다. 미접종자 10명 중 약 8명이 ‘직장 때문에 백신을 맞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셈이다.

항의 시위도 잇따른다. 지난달 25일 맨해튼 뉴욕시청 앞에서는 공립학교 교사와 공무원 등을 포함한 1000여 명이 집회를 열었다. 앞서 뉴욕시는 9월 개학을 앞두고 공립학교 교사와 교직원에 대해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지난달 14일 LA시청 앞에서도 백신 찬반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1명이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지난달 초 미 CNBC방송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9%가 의무화에 찬성했고 46%는 반대해 찬반 여론이 팽팽했다. 집권 민주당 지지자의 대부분이 찬성하고 야당 공화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반대하는 정치 양극화 현상도 뚜렷하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일본 라면집 유리문에 ‘시 지침에 따라 백신을 맞아야 실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법적 다툼도 증가했다. 서부 오리건주 경찰관 및 소방관들은 최근 주 공무원에 대한 민주당 소속 케이트 브라운 주지사의 백신 의무화 조치 시행을 막아 달라며 가처분 소송을 냈다. 이들은 “주지사의 조치가 주 법령과 미국 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북동부 메인주의 시민단체들도 7일 주 보건 당국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주 정부가 지난달 “주내 모든 의료 종사자는 10월 1일까지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이 부당하다는 취지다.

다만 법원은 백신 의무화 쪽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6월 보수 성향이 강한 남부 텍사스주 휴스턴 감리교 병원은 직원들에게 백신을 맞으라고 강제했다가 소송을 당했다. 법원은 “병원의 조치는 직원과 환자를 더 안전하게 하려는 선택”이라며 기각했다. 접종을 거부한 병원 직원들은 무더기로 해고를 당했다.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의 인디애나대 일부 학생들 또한 “학교 측의 교내 백신 의무화 방침이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며 소송을 냈지만 지난달 대법원이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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