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보호해야”…‘처음’이라 속이고 부스터샷 맞는 미국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8일 1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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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재확산하면서 보건당국의 권고가 내려지지 않았는데도 부스터샷(추가 접종)을 맞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백신이 언제 어디서나 맞을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한 데다, 접종 기록을 관리하는 당국의 행정 시스템이 느슨한 결과로 풀이된다. 백신 수급이 여유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대비되는 사례라는 분석도 나온다.

AP통신은 7일(현지 시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금까지 의료기관들로부터 모두 900여 건의 부스터샷 접종 사례를 보고 받았다고 보도했다. 의료기관의 보고는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실제 부스터 샷을 맞은 미국인은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 승인을 받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각 2회, 얀센 백신은 1회 접종을 하면 되지만, 접종을 마친 이후 또 백신을 맞은 이들이 그만큼 있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백신 접종 기록에 대한 확인과 관리가 매우 소홀하기 때문이다. 메인주의 26세 여성인 지나 웰치는 병원에 백신을 처음 맞는다고 말하고 세 번째 주사를 맞았다. 천식과 간 질환을 앓고 있다는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부스터샷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따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보건당국의 부스터샷) 권고를 6개월이고, 1년이고 계속 기다릴 수는 없었다”고 했다.

미주리주 병원 직원인 67세의 윌 클라트도 올 5월 동네 약국에서 세 번째 백신을 맞았다. 클라트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모두 제공했지만 약국은 백신 주사를 놓고 시스템을 검색해본 뒤에야 그가 접종 완료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지난달에는 52세 캘리포니아주 남성이 첫 접종이라고 말하면서 세 번째 백신을 맞았다. 그는 운전면허증 대신에 여권을 신분증으로 제시했는데 약국은 그의 보험회사에 연락해본 뒤에야 그가 3월에 이미 주사를 두 번 맞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처럼 자신의 백신 접종 횟수를 속이고 추가 접종을 하는 것은 보건당국의 지침에 반하는 것이지만, 백신이 남아돌아 폐기 방법을 고민할 정도의 미국에서는 그다지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첫 접종을 시작한지 약 9개월이 경과한 미국은 백신을 맞은 지 오래된 고령자 등을 대상으로 조만간 부스터샷 접종 전략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백신 빈국들을 위해 부스터샷을 일시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백신 접종자의 돌파 감염 등이 빈발하는 미국으로서는 추가 접종 수요를 외면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백신의 효과가 수개월이 지나면 조금씩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미국에선 델타 변이 확산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그동안 백신에 유보적이었던 사람들의 접종률이 크게 올라갔다. CNN방송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앨라배마 아칸소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등 5개 주에서 지난주에 인구당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플로리다를 제외한 4개주는 미 전역에서 접종률이 가장 낮은 지역이었다.

이는 바이러스에 걸릴 공포가 큰 지역일수록 백신을 맞을 동기가 커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로 풀이된다.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기류는 잘 드러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백신 미접종자들을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매우 우려한다고 답한 사람 중 39%는 백신을 맞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별로 우려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 중에는 12%, ‘하나도 우려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 중에는 5%만 백신을 맞겠다고 밝혔다.

백신 접종이 주는 효과도 계속 입증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내 각 주(州)들의 코로나19 입원율 추이를 살펴본 결과 백신 접종률이 평균보다 높은 주는 입원율이 낮게 유지되는 반면, 접종률이 낮은 지역에서는 입원율이 크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칸소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플로리다 등 미 남동부 주들의 사정이 특히 심각했다.

백신을 맞은 사람은 안 맞은 사람과 재감염률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미 CDC가 ‘질병과 사망률 주간 보고서’(MMWR)에서 켄터키주 주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백신 미접종자의 재감염률이 접종 완료자의 2.34배에 달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이번 조사는 ‘한 번 코로나19에 감염돼 회복한 사람들은 자연 면역 때문에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다’는 기존의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바이러스 확산세가 심각한 미국에서는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가 다시 10만 명을 돌파했다. CNN방송은 존스홉킨스대의 자료를 인용해 6일 현재 최근 일주일 평균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만7140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하루 평균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은 것은 올 2월 이후 6개월 만이다.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백신 접종률이 낮은 남동부 주들을 중심으로 병상 부족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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