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소파 푸대접, 여자라서 당한일… 상처 받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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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좌석배치 문제 아닌 여성차별… 얼마나 먼 길 가야할지 보여줘”
3주전 EU-터키 정상회담때, 위원장에 상석 대신 소파 외교결례

터키대통령-EU의장만 마주앉고… 여성 EU집행위원장은 따로 6일(현지 시간)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터키와 
유럽연합(EU)의 정상회담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왼쪽부터)이 앉아 있다. 의전상 정상급 대우를 받아야 하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에르도안 대통령 바로 옆에 앉아야 하는데도 장관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는 이유로 ‘소파게이트’라 불린다. EU 제공
터키대통령-EU의장만 마주앉고… 여성 EU집행위원장은 따로 6일(현지 시간)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터키와 유럽연합(EU)의 정상회담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왼쪽부터)이 앉아 있다. 의전상 정상급 대우를 받아야 하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에르도안 대통령 바로 옆에 앉아야 하는데도 장관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는 이유로 ‘소파게이트’라 불린다. EU 제공
“내가 여성이라서 일어난 일이다. 양복에 넥타이를 맸다면 달랐을 것이다.”

유럽연합(EU) 행정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63·사진)이 6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67)으로부터 상석 의자가 아닌 소파를 제공받은 소위 ‘소파 게이트’ 사태를 언급하며 전 세계에 만연한 성차별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BBC 등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26일(현지 시간) 유럽의회 연설에서 “여성 및 유럽인으로서 상처받고 외로움을 느꼈다. 단순히 좌석 배치를 넘어 여성의 대우에 관한 문제”라고 질타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대우받으려면 얼마나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보여준다. 내가 양복을 입고 타이를 맸다면 이런 일이 일이 벌어졌을까”라고 호소했다. 이런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자신은 특권적 위치를 지녔지만 이런 발언조차 할 수 없는 전 세계 수백만 여성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6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47)과 터키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났다. 지난달 터키가 2014년 45개국이 발효한 여성폭력 방지협약 ‘이스탄불 협약’을 전격 탈퇴한 사건 등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회담장에는 의자가 두 개만 마련됐다. 터키 외교부는 남성인 미셸 의장에게 의자를 권했고 그가 에르도안 대통령과 나란히 마주 앉았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어정쩡하게 서 있어야 했고 간간이 기침 소리를 내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후 그는 터키 외교장관 맞은편에 마련된 소파에 앉았다. 2019년 11월부터 27개 회원국, 5억 명의 인구를 이끌고 있는 그가 일개 장관급으로 격하된 셈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푸대접을 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003년 집권한 그는 그간의 세속주의 정책을 버리고 여성의 히잡 착용 등을 강제하는 등 이슬람 보수주의로 일관했다. ‘성평등은 자연 이치에 어긋난다’ 등 성차별적 발언도 일삼았다. 집권 정의개발당은 이스탄불 협약 탈퇴 이유로 ‘이혼을 부추기기 때문’이라는 상식 이하의 주장을 폈다.

유럽 여성계는 상황을 곧바로 시정하지 않았던 미셸 의장 또한 에르도안 대통령만큼 잘못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미셸 의장이 뒤늦게 “내가 부주의했다”고 사과했지만 비판 여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이번 사태로 내년에 3년 임기가 만료되는 미셸 의장의 재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쳤다. 폰데어라이엔의 작심 발언이 에르도안과 미셸 모두를 겨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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