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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풀어줘도 OK” 플로리다 방역…주지사 인기도 ‘훨훨’[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입력 2021-03-30 14:00업데이트 2021-03-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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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보고 마스크도 안 썼다고 뭐라고 하던데 말이야. 아니 어떻게 마스크를 쓰고 승리의 건배주를 마시라는 거지. 우리 ‘벅스’(플로리다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약칭)가 이겼잖아. 하하.”

지난달 플로리다 주 탬파의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해 ‘슈퍼볼 경기.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지만 거리두기 규칙 때문에 2만 명 정도만 입장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적으로 적용됐으며 객석 간 빈자리에는 사람이 꽉 찬 것처럼 보이도록 종이 인형을 배치했다. 데일리메일

이렇게 호탕하게 웃는 사람. 론 드산티스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공화당)입니다. 올해 전미프로미식축구(NFL) 결승전 슈퍼볼 경기가 지난달 플로리다 탬파 스타디움에서 열렸습니다. 드산티스 주지사가 마스크도 안 쓰고 로열석에서 관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슈퍼볼 같은 밀집 행사에서 마스크도 안 쓰고, 거기다 마스크 안 쓴 걸 자랑까지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을 법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 미국에서 그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100일 2억 명 완료’로 목표를 상향 조정할 만큼 빠르게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코로나19 퇴치에서 갈 길이 먼 미국입니다. 엄중한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수칙이 느슨하기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플로리다 주가 각종 코로나19 통계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다른 주들이 ‘죄고 또 죈다’ 노선을 표방할 때 “최대한 풀어라”고 외쳤던 드산티스 주지사가 요즘 큰소리 뻥뻥 치는 것도 당연합니다.

최근 언론 보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드산티스의 자유방임 도박, 성공을 거두다(CNN)” “죄었던 캘리포니아, 풀었던 플로리다. 왜 결과는 비슷한가?(AP통신)” “드산티스, 어떻게 코로나 전쟁에서 승리했나(폴리티코)” 등 그를 치켜세우는 제목의 기사가 홍수를 이룹니다.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슈퍼볼 경기 때 마스크를 쓰지 않고 로열석에서 관람하며 옆 사람과 담소하는 모습. 데일리메일

드산티스 주지사는 코로나19 초기 때부터 “경제, 경제”를 외쳤습니다. 인구 2100만 명으로 캘리포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플로리다는 관광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지요. 마스크 의무화 정책은 지난해 9월 일찌감치 폐지했습니다. 다른 주들이 마스크를 안 쓴 주민에게 벌금을 부과하지만 플로리다 정부는 “왜 오는 손님 내쫓느냐”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상점에게 과태료를 매길 정도입니다. 학교도 정상등교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술집, 레스토랑 등 각종 유흥 시설과 관광 명소도 정상 운영됩니다.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는 문이 닫혀있지만,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는 활짝 열려 있습니다. 우리 주로 놀러오세요.” 플로리다의 관광 홍보 문구입니다.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의 최근 모습. 정상적으로 운영되며 시설 내 마스크 착용, 입장 시 체온 측정 등이 의무 사항이다. 탬파베이타임스

플로리다는 캘리포니아와 자주 비교됩니다. 인구 많은 대형 주, 온화한 기후 조건, 중남미 이민자 고비율 등의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죠. 이 두개 주는 방역 스타일이 완전히 상반됩니다. 캘리포니아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물론 상점의 실내 운영이 엄격히 제한되고 관광시설도 문을 닫는 등 초강력 방역주의입니다. 지난달 음식점 이용 제한이 부분적으로나마 풀리자 참고 참았던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외식하러 쏟아져 나오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죠. 반면 플로리다는 최대한 방역 규칙을 적게 만들며 자유방임을 내걸고 있습니다. ‘건강 문제는 다들 자신이 알아서 지킨다’는 것이 기본 철학이죠.

극과 극의 방역 원칙을 내걸었지만 결과는 비슷합니다. 주당 평균 수치를 내는 존스홉킨스대 보건안전센터 자료에 따르면 3월말 현재 감염자 수에서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는 10만 명당 9000명대로 비슷합니다. 전체 50개 주중에서 20~30위권을 오르내리고 있죠. ‘톱’은 노스다코타와 사우스다코타가 1만3000명 수준으로 각각 1,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당 사망자 수도 마찬가지입니다. 27일 현재 플로리다는 10만 명당 152명, 캘리포니아는 149명으로 각각 27위, 28위입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은 주는 뉴저지로 270명이 넘습니다.

물론 플로리다가 1등을 차지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유방임 정책으로 이 정도의 성적을 일궈냈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플로리다 경제는 착실한 성장세를 보이며 4~5%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미국 전체 실업률이 15%까지 치솟았다가 최근에야 8%대로 하락한 것과 비교되죠. 그 여세를 몰아 드산티스 주지사는 아직 ‘엄격 방역’을 밀고 나가는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하루가 멀다 하고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하늘 길만큼 뱃길도 열려야 한다”며 지난해 3월 내려졌던 유람선 운영 금지 규칙을 해제시켜달라는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주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플로리다 항구들을 출발해 중남미를 여행하는 로열캐러비안, 카니발, 디즈니 등의 호화 유람선은 플로리다에서 15만 명의 고용과 80억 달러의 임금을 창출한다고 합니다.

팬데믹 이전 시절 플로리다 주 코코아비치 인근을 항해하는 디즈니유람선 2척. 왼쪽은 플로리다 바로 아래 바하마 제도 쪽으로 가는 판타지호, 오른쪽은 좀 더 남쪽의 카리브해 노선인 드림호. 데일리메일

드산티스 주지사가 이렇게 유람선 재개까지 챙기고 있을 때 “방역 리더십” 칭송을 받았던 다른 주지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초기에 거의 ‘영웅’ 대접을 받았던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잇단 성추문과 요양원의 코로나19 사망자 통계를 은폐했다는 의혹 때문에 정치 생명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아예 개빈 뉴섬 주지사의 초강력 방역 대책들이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며 축출을 위한 주민소환 투표를 벌이고 있습니다. 소환 투표 정족수인 150만 명 서명은 이미 도달했죠.

전문가들은 플로리다가 느슨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과학계에서도 “미스터리”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죠. 존스홉킨스대 연구에 따르면 규제 정도와 확진자 사망자 수를 단순 인과 관계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합니다. 수많은 중간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구역당 인구 밀집도, 다른 주로부터의 일시적 방문자, 미신고 불법 이민자, 습도와 풍속 같은 기후환경도 모두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코네티컷은 ‘강한 규제,’ 사우스다코타는 ‘약한 규제’라는 상반된 방역원칙에 불구하고 모두 ‘감염률 톱10’ 주에 꼽히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는 않은 어떤 중간 변수가 플로리다의 우수한 실적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플로리다 시와 카운티 정부, 상점주 등은 주정부의 느슨한 방역 대책에 반발해 자율적으로 마스크 의무 착용, 거리두기 원칙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도 계산에 넣어야 하겠죠.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보듯이 금지 위주의 정책은 일정 수준까지만 효과를 낼 뿐 시간이 지나면 ‘위반할 사람은 위반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고 합니다. 마약 복용이나 에이즈 등 성 매개 감염병을 막기 위해 다양한 금지 캠페인을 실행해봤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미국은 더 잘 알고 있죠.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초대를 받고 백악관에 가서 플로리다의 코로나19 대응 실적을 홍보하는 드산티스 주지사(왼쪽). NBC

어쨌든 드산티스 주지사는 플로리다의 코로나 성공 스토리를 온통 자신의 공으로 돌리며 정치적 야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초선 주지사로 내년 재선을 앞두고 있는 그의 캠페인 진영에 공화당의 거물 선거 전략가들이 총집결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하지만 주지사 재선 정도로 만족할 사람이 아닙니다. 2024년 공화당 대선 구도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성에 도전할 만큼 인기가 높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도널드 미니미(mini-me)’로 불리며 처음 정치 무대에 등장했을 때와 비교하면 코로나19가 그에게는 행운의 여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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