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안 했는데 ‘삐걱’…美 바이든 첫 기자회견[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3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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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질문 제출로 언론과 대립각
코로나로 백악관 출입 기자도 줄여
교묘한 언론 통제라는 비난도
기자회견 전통은 케네디가 시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습니다. 최근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25일 첫 기자회견을 갖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취임 후 65일만이죠. “첫 기자회견이 너무 늦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 끝에 그나마 지금이라도 한다니 다행이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다수의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자회견 방식을 두고 백악관과 기자단 사이에 갈등이 쌓이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은 기자들의 질문을 사전에 제출받지 않는 것이 전통입니다. 대통령은 관례적으로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악관 공보국이 사전에 질문을 받아갈 것이라는 소문이 기자들 사이에 퍼져있다고 합니다. 기자단 대표인 ABC방송 기자는 백악관 측과 이 문제를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하죠. 언론과 사이가 나빴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조차 언론의 독립성을 위해 사전 질문을 받지 않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는 전임 트럼프 대통령 시절과는 다르게 언론과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매일 부지런히 언론 브리핑을 하며 기자들과 만납니다. 트럼프 행정부 때는 볼 수 없었던 일이죠. 하지만 백악관 언론 관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현재 백악관 브리핑에는 10명 정도의 기자가 참석합니다. 백악관이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엄수해야 한다”며 평소 50명씩 달하던 기자 수를 확 줄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게다가 지난달부터는 그 적은 기자들로부터 받는 질문조차 “내용을 먼저 제출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요즘 백악관 브리핑의 상당 부분이 과학적인 데이터 조사가 필요한 코로나19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브리핑용 질문을 사전에 받기 시작했으니 기자회견용 질문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죠.



언론과의 가장 극적인 갈등 사례는 코로나19 검사비용 부담 문제입니다. 백악관에는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오가며 취재를 합니다. 브리핑에 참석할 수 있는 기자 수는 제한되지만 백악관 내부, 특히 업무동에 해당하는 웨스트 윙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백악관 경내에 입장하는 언론사 관계자들은 매일 코로나19 신속 항원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 비용이 1인당 170달러(19만 원 정도)로 매우 비싸다는 것입니다. 출범 후 1개월은 이 비용을 대주던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부터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언론사에게 ‘자체 해결’을 통보했습니다. 물론 언론사가 자발적으로 백악관에 들어가 취재하는 것이니 자체 부담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한번 촬영에 10명 이상의 보조 인력이 투입되는 방송사의 경우 매일 2000달러(226만원)를 넘나드는 검사 비용을 대느라 허리가 휜다고 합니다. 언론사들이 “백악관의 비싼 검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검사를 받고 증명만 제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백악관은 “공신력 있는 검사 기관이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언론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백악관에 입장하는 기자들을 최대한 줄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이용한 교묘한 언론통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현재까지 진행된 협상에 따르면 기자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사전 질문 제출 요구를 수용해 기자회견을 예정대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워낙 관심이 집중되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언론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합니다.

기자회견이 이렇게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대통령 기자회견은 TV로 생중계됐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기자회견을 해도 국민은 하는 줄도 모르거나 알아도 나중에 알게 됐죠. 외모와 언변이 모두 뛰어났던 케네디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TV 생중계를 밀고 나갔습니다. 1960년대 초반 미국 TV 보급률이 87%에 달할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받는 매체가 됐다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죠.



취임 후 닷새 만인 1961년 1월 25일 시작된 케네디의 대국민 기자회견은 월 2회 꼴로 정례화 됐습니다. 기자회견 뿐 아니라 대중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즐겼던 케네디 전 대통령은 크고 작은 행사에서 공식 연설을 한 횟수가 700회에 이릅니다. 전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비슷한 수치죠. 하지만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이 8년이었고, 케네디 전 대통령은 3년 미만이라는 점을 비교하면 ‘연설광’으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전까지 기자회견이 주로 열렸던 백악관 인디안티룸이 너무 협소하다며 200명 정도가 수용 가능한 국무부 대강당으로 옮겨 갈 정도였습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극도로 싫어한 대통령으로 꼽힙니다. 말년에 코로나19 대응 기자회견을 몇 차례 열기도 했지만 그 이외의 일반적인 국정 내용에 대한 기자회견은 4년을 모두 합쳐봤자 10회 정도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백악관 잔디밭에 모여 있다가 헬기를 타고 떠나기 직전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질문을 외쳐대는 광경을 자주 연출했습니다. 워낙 유명해 ‘헬리콥터 기자회견’이라고 불립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보면 역시 기자회견을 꺼리는 쪽입니다. 30년 넘는 상원의원 경력에 부통령까지 지냈지만 “기자회견에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언론 대응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잦은 말실수 때문입니다. 본인도 “나는 말실수 기계(gaffe machine)”라고 인정할 정도입니다.

정국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기자회견도 정치화됩니다. 최근 한국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듯이 질문을 던진 기자의 평소 보도 성향을 들춰내고, ‘기자의 손가락 모양이 무엇을 암시하느냐’까지 화제가 되는 시대입니다. 아직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지지 세력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죠.

기자들은 자유롭게 질문하고, 대통령은 조리 있고 당당하게 답변하는 미국식 기자회견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습니다. 우리나라 정부 당국자들도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웁니다. 그런 기자회견이 사전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내건 ‘존경 받는 미국의 귀환’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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