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목숨 앗아간 콜로라도 총기난사범 알리사는 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4일 14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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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출신 이민자로 평소 망상 증세
종교적 신념 없지만 이슬람 혐오에 반감
바이든, “총기 규제 강화” 의회에 호소

22일 미국 콜로라도주의 슈퍼마켓에서 10명을 죽인 총기난사범 아흐마드 알리사(21)는 시리아 출신의 이민자로 평소 반(反)사회적 성향에 망상증을 앓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적으로 아주 편향되거나 뚜렷한 종교적 신념을 갖지는 않았지만 이슬람 혐오에 반감이 있고 학창시절부터 어느 정도의 폭력성은 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알리사를 ‘1급 살인’ 혐의로 기소한 경찰은 그의 범행 동기를 조사 중이지만 아직 이에 대한 뚜렷한 단서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생자 대부분이 이 동네에 거주하는 백인이라는 점에서 아시아계 등을 향한 혐오범죄의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규제의 강화가 시급하다고 의회에 호소했다.

● “누가 날 쫓는다” 망상, 이슬람 혐오에 거부감도

23일 덴버 지역 언론과 CNN, 데일리비스트 등의 보도에 따르면 1999년 태어난 알리사는 2002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현재 거주지인 덴버 인근 알바다에 정착한 것은 2014년이다. 그는 2015년부터 3년 간 이곳의 웨스트 고교를 다녔다.

알리사의 형(34)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정신질환이 심각해진 것은 이 때부터다. 그의 형은 “고등학교에서 친구들이 알리사의 이름, 그리고 그가 무슬림이라는 점을 놀려댔으며 그게 아마도 반사회적 성향을 갖게 된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상 누군가에 쫓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이 자신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컴퓨터 웹캡에다가 테이프를 붙여 놓기도 했다. 형은 “우리는 고등학생 때 그를 항상 주시했다. 그는 ‘누군가가 날 쫓고 있다’고 말했고 우리는 ‘진정해. 아무도 없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알리사의 페이스북 글을 보면 그의 망상증이 꽤 심각했다는 게 드러난다. 2019년 3월의 포스팅에서 알리사는 “전화기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법률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내 옛 학교가 내 핸드폰을 해킹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라고 적었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던 그는 무슬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도 드러냈다. 알리사는 2019년 7월 페이스북에 “인종차별적인 이슬람 혐오자들이 내 전화기를 해킹하는 것을 멈추고 내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만 해 준다면”이라고 적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자 알리사는 “확실히 인종이 일부 이유인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 대한 허위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다”고 답했다.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백인 우월주의자가 이슬람 사원에 총격을 했을 때 그는 “사원 안의 무슬림은 단지 한 총격범의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비난한 전체 이슬람혐오 산업의 희생자였다”고 썼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지만, 동성 결혼이나 낙태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정치적 견해가 한쪽으로 일치되지 않고 혼재되는 성향을 보인 것이다.

알리사는 고교 시절부터 레슬링과 킥복싱 등 무술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으며 고교에서 실제 레슬링팀원으로 활동했다.

알리사는 이 과정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고교에서 자신에게 인종차별적 언사를 했다는 이유로 동급생을 마구 폭행해 때려눕혔다. 그는 이 사건으로 3급 폭행 혐의로 기소됐고 법원은 1년 보호관찰과 48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그와 레슬링팀에서 같이 활동했다는 사람은 언론에 “그는 좀 무서워서 같이 지내기가 어려웠다”면서 “그가 게임을 지고 나선 방에 와서 소리를 지르고 마치 모두를 다 죽일 것처럼 행동했다”고 회고했다.

● 집에 다른 무기도 발견…현장서 전술 조끼도 착용

사건 전후의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그가 범행에 사용한 총이 개조한 AR-15형 소총이었다고 밝혔다. 범행 당시 그는 탄창을 갈아낄 수 있는 ‘전술 조끼’도 입고 있었다.

경찰이 그의 집을 수색했을 때는 여러 가지 다른 무기도 발견됐다. 경찰 조서에 따르면 알리사는 범행 6일 전인 16일에 루거 AR-556 권총을 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한인과 아시아계 여성 등 8명이 희생된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다만 알리사의 총기 구입과 이 사건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가족은 경찰에 이틀 전 알리사가 기관총 같이 생긴 것을 갖고 장난하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알리사가 슈퍼마켓 앞 주차장에서 한 노인을 쏜 다음에 쓰러진 그를 밟은 채 또다시 여러 차례 총을 쐈다는 진술이 나왔다. 또 경찰 특수공격대(SWAT)가 그를 제압하기 위해 슈퍼 안에 들어가자 알리사는 상의를 탈의한 채로 뒷걸음질치며 경찰에 걸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 당일 한 동영상에서 그가 다리에 피를 흘린 채 경찰에 끌려가던 장면은 실제 그가 총상을 입은 결과라고 경찰은 확인했다. “공범이 있느냐”고 경찰이 묻자 그는 “엄마랑 얘기하게 해 달라”고만 답변했다고 한다.

● 또다시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

일주일도 안 돼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잇달아 터지자 미국에서는 총기 규제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1시간은커녕, 1분도 더 기다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상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상원과 하원의 동료들이 행동해줄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것은 당파적 이슈가 아니다. 이건 미국의 이슈”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공격용 무기 판매 금지와 총기 판매를 할 때 신원조사를 의무화하는 법률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관련 법안의 의회 통과를 위해서는 공화당의 협조를 얻어내야 하는 만큼 총기 규제 강화가 빠르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 통과가 필요 없이 총기 규제를 할 수 있는 몇 가지 행정 명령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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