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BNO 여권은 안돼” 승무원에 교체 지시…中英 갈등 커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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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최대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 항공이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가진 승무원들에게 중국 여권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영국이 BNO 여권을 가진 홍콩인들의 영국 시민권 취득을 확대하기로 하자 중국은 곧바로 BNO 여권의 효력을 중단했는데 캐세이퍼시픽 항공사가 중국 정부의 조치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번 사건은 홍콩인들의 영국 시민권 획득을 확대하기로 한 영국과 이에 반발하는 중국 간 갈등 과정에서 처음 나온 움직임이어서 주목된다.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홍콩 캐세이퍼시픽 항공이 승무원들에게 28일까지 BNO 여권을 중국 여권인 홍콩 특별행정구(SAR) 여권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는 “승무원들이 등록한 각종 서류에 BNO 여권이 기재돼 있을 경우 비행을 할 수 없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승무원 뿐만 아니라 승객들에게도 BNO 여권 대신 다른 신분증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SCMP는 “지난달 31일 한 승객이 BNO 여권으로 신분을 증명하려다 제지당했다”면서 “결국 홍콩신분증(HKID)을 제시하고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영국 정부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에 맞서 지난달 31일부터 BNO 여권을 가진 홍콩인들의 특별비자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과거 BNO여권을 가진 홍콩인들은 최대 6개월까지 영국에 머물 수 있었지만 특별비자를 받으면 5년까지 체류할 수 있고 취업도 가능하다. 이후 시민권 신청도 할 수 있다. 중국은 영국의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해 같은 날부터 BNO 여권의 여행증명과 신분증명 기능을 중단키로 했다.

중국 정부의 BNO 여권 효력 중단 조치들이 확대 시행되면 앞으로 BNO 여권으로는 홍콩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사실상 영국의 시민권 확대 정책을 무력화 시킨 셈이어서 중국과 영국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부의 시민권 확대 정책에 중국 매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홍콩보안법을 빌미로 시민권 확대 정책을 펴는 것은 홍콩 독립 세력에게 ‘뒷길’을 제공해 홍콩을 교란시키려는 의도”라면서 “영국이 홍콩카드를 만지작거릴수록 스스로 모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은 중국의 반발에도 시민권 확대 조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새 제도 시행을 앞두고 발표한 성명에서 “홍콩의 영국해외시민들이 영국에서 살고, 일하고, 정착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게 돼 대단히 자랑스럽다”며 “영국은 중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홍콩 시민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과 영국은 시민권 확대를 둘러싼 갈등 외에도 여러 사안에서 계속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중 갈등 못지않게 영중 갈등도 심각해 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10개 나라 협의체인 ‘D10(Democracy 10)’ 구성을 주도하고 있다. 올해 6월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한국과 호주, 인도를 초청하는 등 움직임을 구체화 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의 안보협의체 ‘쿼드’에 가입할 의사도 내비치고 있다. 영국의 쿼드 참여 움직임에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일 “영국은 더 이상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아니다”면서 “런던이 워싱턴 못지않게 어리석다”고 비난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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