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하러 온 사람도” 美의회 女의원 드레스코드는?[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기자 입력 2020-08-12 13:22수정 2020-08-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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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원 ‘바지 등원’ 구경 온 남성 의원들
“의정활동 관심 못 받고 바지 입으니 주목”
“남성 의원들이 저를 구경하러 왔더군요. 다들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제 앞에서 욕은 안 하더군요. 제럴드 포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로부터는 ‘보기 좋다. 더 자주 입어라’는 격려까지 들었습니다.”

때는 1969년. 샬럿 리드라는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은 의회에 처음 바지를 입고 등원한 여성의원이라는 ‘대역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이렇게 인터뷰까지 했죠.

최근 한국 여성 국회의원의 ‘원피스 논란’을 보면서 미 의회의 여성 드레스코드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대표적으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흔히 ‘파워슈트’라고 불리는 강렬한 원색의 바지정장을 즐겨 입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미국에서는 1969년이 돼서야 바지를 입은 여성 의원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여성 의원은 의회에서 공식 업무를 볼 때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적용됐던 것이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강렬한 원색의 바지정장을 즐겨 입는다. 바지가 활동성이 좋긴 하지만 아직까지 치마를 입고 등원하는 여성 의원이 훨씬 더 많다. 베니티페어 웹사이트

1969년은 미국에서 반전 시위가 활화산처럼 타오른 해입니다. 당시 56세의 리드 의원은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에 용기를 얻어 바지를 입는 대 모험을 강행했습니다. 물론 바지를 입는다고 여성인권이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여성에서만 적용하는 복장 규제는 성차별의 중요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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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워싱턴포스트 기사에는 남성 의원의 감상 평(?)까지 실려 있습니다. “글쎄 바지를 입은 여성 의원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리드 의원은 한번의 시도로 족했는지 더 이상 바지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물러섭니다. 보수적인 의회 분위기가 신경이 쓰였던 걸까요.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녀는 여성스러움(femininity)을 강조하기 바쁩니다.

“그래도 의회에서 여성의 여성다움을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바지를 입었다고 여성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1969년 바지를 입고 등원한 샬럿 리드 의원이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이 이어지자 워싱턴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녀가 입은 바지정장은 보좌관이 선물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

이후 ‘바지 모드’는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다 1993년 여성 상원의원 3명이 작심을 하고 단체로 바지를 입고 본회의장에 등장한 뒤부터 많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내친 김에 미국 여성 정치인들의 눈물나는 성차별 철폐 노력을 한번 살펴볼까요.

1962년 워싱턴 국회의사당 건물에 처음으로 여성 화장실이 생깁니다. 단독 화장실이 아닌 여성 휴게실 내 화장실 구조입니다. 단독 여성 화장실은 1992년 처음 생깁니다.

1962년 국회의사당에 처음 생긴 여성 화장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린디 복스 리딩룸’으로 불리는 여성 전용 휴게실 안에 만들어졌다. 여성 휴게실의 최근 모습. 살롱닷컴 웹사이트

1971년 의회 사무보조, 도어맨, 경비원, 경찰관 등 행정업무에 처음 여성이 채용됩니다.

1985년 여성 하원의원 3명이 의회 지도부 사무실 앞에서 시위까지 벌인 후 남성 전용으로 운영돼온 의회 헬스클럽이 여성의원에게 개방됩니다. 하지만 여성 탈의실은 만들지 않아 꽉 끼는 헬스 복을 입은 여성의원들이 자기 사무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의회 복도를 뛰어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2006년 상원, 2007년 하원에서 처음 수유실이 문을 엽니다.

2017년 여성 하원의원 30명을 주축으로 ‘민소매 금요일’을 만들어 단체로 팔뚝을 드러낸 옷을 입고 본회의장에 나타납니다. ‘팔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드레스코드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죠.

‘팔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드레스코드에 항의하기 위해 2017년 ‘민소매 금요일’을 만들어 팔뚝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등원한 여성의원들이 의사당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CNN 웹사이트

거창한 슬로건이 아닌 생활 주변의 화장실, 수유실, 헬스클럽 등에서 펼쳐온 양성평등의 역사는 정말 길고 험난한 길을 걸어왔네요. 1969년 ‘바지녀’ 리드 의원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저는 5년 전 의원에 당선된 뒤 하원 세출위원회에서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만 의정활동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랬는데 바지 한번 입고 왔더니 유명인이 됐네요.”

그녀가 굳이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기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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