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공관 갈등 원인은 풍수 탓? [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기자 입력 2020-08-05 14:00수정 2020-08-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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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사관 설계자 미스터리 한마디 “풍수가 좋지 않아”
《이번 주부터 디지털스페셜 ‘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가 매주 온라인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2011~14년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필자가 세계 정치외교의 중심지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의 뒷얘기를 풀어놓겠습니다.》


세계 각국은 워싱턴에 대사관을 개설하고 치열한 외교전을 펼칩니다. “치외법권 지대 대사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숨 막히는 첩보 액션….” 이런 카피의 영화도 있었죠.

워싱턴 북서쪽 매사추세츠 애비뉴에 형성된 대사관 거리에 가보면 정말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너무 조용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대사관 내부에서야 치열한 정보전쟁이 벌어지고 있겠지만 외관상으로만 보면 평온하고 한적한 미국 도심 부촌의 모습입니다. 가끔 지나다니는 외교전용 번호판을 단 자동차를 보고서야 “내가 지금 외교가 한복판에 있구나”를 깨닫게 되죠. 이 거리에 있는 주미 한국대사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단 예외가 있습니다. 요즘 폐쇄 논란으로 시끄러운 미국 내 중국 공관의 좌장격인 워싱턴의 주미 중국대사관입니다. 매사추세츠 애비뉴에서 좀더 북서쪽으로 가면 나오는 인터내셔널 플레이스라는 곳에 위치한 중국 대사관은 날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중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인권탄압, 소수민족 박해에서부터 노벨평화상 수상자 가택연금,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미국 방문까지 중국 관련 온갖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사관 앞은 시위대로 시끌벅적합니다. 주로 중국 사회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미국 내 중국인들이 시위를 조직하고 미국인들도 많이 가세합니다. 저는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취재하기 위해 몇 차례 가 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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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워싱턴의 주미 중국대사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출처=인터내셔널 캠페인 포 티베트 웹사이트


그러고 보니 중국대사관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도 분위기는 막상막하입니다. 미국 외교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중동사태의 핵심 국가인 만큼 이스라엘 대사관 앞도, 좋게 말해 생동감이 넘칩니다. 중국 대사관과 이스라엘 대사관이 쌍둥이처럼 주목을 한 몸에 받고 나머지 대사관들은 조연에 만족하는 것이 워싱턴 외교가의 현주소라 할 수 있죠. 외관상으로도, 실제 외교 당국자들의 정책적 관심도와 범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주미 중국대사관 건너편에 자리 잡은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이곳도 시위대로 몸살을 앓는다. 사진출처=주미 이스라엘대사관 웹사이트


○“사랑하던지, 미워하던지”
날로 팽창하는 중국의 위세를 보여주듯 중국 대사관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합니다. 규모가 너무 커 가까이 서면 벽밖에 안 보이고,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내려다봐야만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국력에 걸맞지 않게 워싱턴 도심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신세였다가 2억 달러를 들여 2008년 현재의 위치에 신축했습니다. 면적 2만3000㎡로 중국의 해외 공관 중 가장 넓습니다.

워싱턴의 주미 중국대사관. ‘모더니즘 건축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I M 페이가 아들 2명과 함께 세운 건축회사 페이 파트너쉽 아키텍츠가 설계했다. 사진출처=주미 중국대사관 웹사이트


대사관은 중국계 미국 건축가 이오 밍 페이의 작품입니다. 영문 이니셜을 따 ‘I M 페이’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건축가입니다. 건축계에서 록스타 급 인기를 누리던 디자이너로 지난해 타계했죠.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그의 모더니즘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며 콕 집어 보스턴의 존 F 케네디 기념 도서관 설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설계한 보스턴의 존 F 케네디 기념 도서관 앞에서 웃고 있는 페이. 사진출처=보스턴글로브 웹사이트


“Love him or hate him(사랑하던지, 미워하던지).” 미국인들은 페이의 건축을 두고 이 말을 자주 합니다. “그저 그래” 같은 미지근한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는 워싱턴에서 중국대사관 말고도 랑팡 플라자, 국립미술관 동관 등 많은 건물을 지었습니다. “워싱턴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건물의 절반은 페이의 손에서 태어났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의 건물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데요. 콘크리트, 강철, 유리 자재를 즐겨 이용하고 요즘 대세인 자연친화적 디자인과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자신이 설계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앞에서 포즈를 취한 페이. 사진출처=포천 웹사이트


중국대사관도 마찬가지. 베이지색 페인트로 칠한 기하학적 콘크리트 건물로 보안을 이유로 창문을 최소화했습니다. 그러니 이리 봐도 벽, 저리 봐도 벽 밖에 안 보입니다. 감정을 배제한 현대사회처럼 ‘드라이’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중국이라 편의 봐드린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한 명성의 페이가 가장 중국적인 컨셉인 풍수에 집착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국무부의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그는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다며 중국대사관 건립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은 워싱턴에 대사관을 신축할 때 국무부에 부지 선정을 요청합니다. 2006년 중국 측의 요청을 받은 국무부는 현재의 자리를 선정해줬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설계 총감독을 맡은 페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지죠. “펭수이(풍수의 미국식 발음)가 좋지 않아.”

국무부 당국자들은 두 번 놀랐다고 합니다. 첫째, 그 유명한 페이가 국무부 공무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오다니. 둘째, 전문적이고 심오한 건축학 설교를 할 줄 알았던 페이가 아직 서구인들에게는 낯설고 심지어 미신으로까지 여겨지는 풍수를 거론하다니.

미 정부는 페이 설득 작전에 나섭니다. 좋게 말해 ‘설득’이지 실제론 ‘생색내기’입니다. 당국자들은 페이를 직접 만나 “다른 나라도 아니고 중국이라 우리가 매우 신경을 써서 정해 드린 겁니다. 그런데 싫다고 하시면…”이라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미 정부가 신경을 많이 쓴 것만은 확실합니다. 워싱턴DC의 토지 구획 시스템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복잡합니다. 비슷한 구역이라도 관할권이 특별구인 DC 정부, 연방 정부, 버지니아 주정부, 메릴랜드 주정부로 제 각각입니다. 인근 지역은 모두 DC 정부 관할인데 반해 중국 대사관이 위치한 인터내셔널 플레이스 일대는 연방 정부가 소유권을 행사합니다. 아무래도 중국대사관 입장에서 보면 연방 정부 관할인 것이 지자체를 일일이 상대하는 것보다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편하겠죠.

게다가 우연하게도 미국은 비슷한 시기에 베이징에 자국 대사관을 지을 계획이었습니다. 중국대사관 부지를 잘 잡아줘야 중국도 보답의 표시로 베이징 좋은 곳에 미국대사관을 짓도록 편의를 봐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페이를 설득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지요. 미 정부가 집요하게 설득하자 당시 90대 할아버지로 산전수전 다 겪은 페이는 허허 웃으며 “알겠다. 그 부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중국 베이징의 주중 미국대사관. 2008년 주미 중국대사관과 같은 해에 완공됐다. 미국의 유명 건축회사 SOM이 설계했다. 사진출처=SOM 웹사이트



○ 중국의 대미 정보수집 타격 불가피
이제 현재로 건너뛰어 여론의 관심사는 영사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중 외교 갈등이 대사관까지 확대될지 여부입니다. 그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대사관 폐쇄는 외교관계 파탄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매우 비밀스러워 보이는 대사관 내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 정부가 대사관을 거점으로 주재원, 연구원, 심지어 특파원까지 정보 수집 도구로 이용한다는 것은 워싱턴의 비밀 아닌 비밀이니까요.

미중 외교 전면전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페이의 말이 예언인 듯 아닌 듯 뇌리에 남습니다. “펭수이가 좋지 않아.”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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