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봉쇄령, 국경 폐쇄…中보다 확진자 많아진 유럽 ‘특단 비상조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9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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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진전 사항을 알리겠다.”

18일(현지 시간) 백악관 브리핑룸 연단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첫 발언부터 ‘전쟁’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에 맞서 사실상의 전시(戰時) 체제에 들어갔음을 천명한 순간이다. 유럽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가장 큰 도전”(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우리는 전쟁 중”(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같은 지도자들의 발언과 함께 군 병력과 물자를 동원하는 특단의 조치들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코로나19라는 적에 맞서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같은 의료 물품 생산의 확대를 위해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하면서 대응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해리 트루먼 행정부가 제정한 법으로, 전쟁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군수용 물품 생산에 민간업체들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날 브리핑에서 해군 병원선 2척을 뉴욕 동부 및 미국 서부 연안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각 병원선에는 1000개의 병상이 갖춰져 있다. 이날 브리핑에 동석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국방부가 500만 개의 군용 N95 마스크와 2000개의 산소호흡기를 보건당국에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야전 병원이 필요한지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재난관리처(FEMA)의 대응 등급을 최고 수준인 1단계로 격상하고, 사람들의 이동 제한을 위해 캐나다와의 국경을 30일간 폐쇄한 조치 등도 공식 발표했다. 그는 코로나19를 ‘보이지 않는 적(invisible enemy)’으로 부르며 “가장 힘든 적은 보이지 않는 적이지만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이를 물리칠 것이고 완전한 승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CNN에 따르면 미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18개월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미국 내 확진자 수는 하루 만에 2891명이 늘면서 9415명으로 급증했다. 사망자 수는 150명에 이른다. 의회에서도 마리오 디아즈벌라트(공화·플로리다), 벤 매캐덤스 하원의원(민주·유타)이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유럽, 방역물품 생산에 민간기업 동원

유럽 일부 국가는 전국 봉쇄령, 국경 폐쇄, 상점 운영 중지 등 사실상 전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유럽 전체 확진자가 9만 명을 넘어서면서 중국 본토보다 많아진 상황이다.

영국은 치안 유지 및 임시병동 설립을 위해 런던을 중심으로 군 병력 2만 명을 긴급 대기시키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영국에서 이런 대규모 군 병력이 치안 유지에 투입되는 건 영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영국 정부는 이르면 20일 ‘런던 봉쇄’라는 극단의 조치까지 준비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모든 학교에 대한 휴교령을 발표하면서 “수일, 수주 내에 더 과감하고 더 빠르게 조치를 취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역시 공공시설, 일반 상점 폐쇄, 종교행사 금지 등 전례 없는 제한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며 “(각종 제한은) 생명을 구해야 하는 지금 순간에 필수 불가결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들 나라는 민간 지원까지 요청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존슨 내각은 자동차 업체 등 60여 개 제조사에 코로나19 치료에 필요한 의료장비 생산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고, 호텔의 임시병동 활용 및 은퇴한 의사들의 현장 복귀도 지시했다. 현지 언론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투기 엔진 장갑차 부품 등 군 장비 제작을 민간 기업에 요청한 것과 유사하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루이뷔통의 모기업인 프랑스 그룹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가 16일부터 프랑스 내 자사 향수 화장품 제조시설에서 손세정제를 생산하고 있다. 프랑스 주류회사 페르노리카, 스코틀랜드 주류회사 브루독 등도 손세정제나 알코올을 대량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폭증하는 확진자 때문에 축구장에 천막을 설치해 임시 병실로 사용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7500억유로(약 1037조 원) 규모의 자산을 매입하는 대규모 추가 부양책을 발표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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