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일성이 마오쩌둥에 보낸 ‘6·25전쟁 파병요청’ 친필편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5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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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에게 “우리 자체 힘으로 (패전) 위기 극복 가능성 없다”고 매달려
마오쩌둥의 파병 초안, 형식은 지원군이지만 정규군 파견 드러나
정전협정에 “중국 인민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 주장
6·25전쟁 ‘항미원조’ 전쟁이라는 중국, 미국에 함께 맞선 북-중 혈맹 강조


중국 정부수립 70주년(10월 1일)을 맞아 24일부터 베이징(北京)에서 열리고 있는 70주년 역사 관련 대형 전시에 김일성이 1950년 6·25전쟁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보낸 파병 요청 친필 편지와 마오쩌둥이 김일성에게 보낸 파병 결정 통보 친필 편지가 등장했다.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의 침략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의미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중국은 1949년부터 올해까지 70년간 중국이 거둔 성과를 전시한다는 의미로 이 전시의 이름을 ‘위대한 여정, 눈부신 성과 - 중국 성립 70주년 대형 성과전’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는 이중 1950년의 6·25전쟁 참전 내용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소개했다. 24일 전시 첫날부터 베이징전람관에 몰린 중국인들도 6·25전쟁 참전 전시를 눈여겨봤다.

무역전쟁 등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올해 북-중 수교 70주년(10월 6일)을 맞아 미국에 함께 맞선 북-중 혈맹의 역사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전시에서 1953년 7월 27일 협정 서명식을 소개하면서 “북한 정전협정 서명 의식이 판문점에서 거행됐다. 중국 인민은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도 주장했다.
24일 본보 기자가 찾은 전시장에는 김일성이 1950년 10월 1일 마오쩌둥에게 보낸 친필 편지 중국어본과 한글본 사본이 모두 전시됐다. 김일성의 편지에는 패전 위기감을 드러낸 김일성이 마오쩌둥에게 파병을 요청하는 대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김일성은 ‘존경하는 모택동 동지 앞’이라고 시작하는 편지에서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우리 조선에게 당신께서 배려를 베풀어 주시어 각 방면으로 원조를 하여 주시는 데 대하여 조선노동당을 대표해 충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미국 침략가들을 반대하는 우리 인민의 해방전쟁에 대해 당신에게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미군 침략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전에는 우리의 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쟁 상황은 참으로 엄중합니다. 전선에는 우리에게 참으로 불리한 조건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고 했다.

김일성은 “적은 약 1000대의 각종 항공기로 매일 주야를 구분하지 않고 전선과 후방 할 것 없이 마음대로 폭격전을 감행하고 있습니다”라며 “후방에서 적의 항공기들은 교통 운수 통신 등과 기타 시설들을 마음대로 타격하며 적들의 기동력이 최대로 발휘되는 반면에 우리 인민군 부대들의 기동력은 약화 마비되고 있습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일성은 “친해하는 모 동지시여, 적들이 금일 우리가 처하여 있는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을 이용해 우리에게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진군하여 38도선을 침공하면 우리 자체의 힘으로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패전 위기감을 털어놓았다. 이어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즉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같이 중국 인민들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라며 파병을 요청했다.

마오쩌둥이 참전을 결정하는 회의 모습을 담은 그림 아래에는 “1950년 10월 북한 당과 정부 요청에 따라 중국 공산당 중앙이 항미원조를 결정했다. 국가 보위를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1950년) 10월 19일 중앙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파견돼 전투를 벌였다”는 설명이 달렸다. 이 그림은 1950년 마오쩌둥이 베이징의 중앙정부 기관 밀집 지역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중앙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한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의 파병요청 편지 바로 옆에는 마오쩌둥이 김일성에게 그해 10월 8일 파병 결정 사실을 통보하는 전보 사본도 공개됐다. 마오쩌둥 특유의 서예 필체가 눈에 띠었다.

마오쩌둥은 ‘김일성 동지에게’로 시작하는 전보에서 “현재 정세를 근거로 나는 지원군을 북한에 파견해 침략자 반대를 돕기로 결정했다”며 “펑더화이(彭德懷) 동지가 중국인민지원군의 사령원 겸 정치위원을 맡는다. 중국인민지원군 후방 지원 업무는 동북군구 사령원 겸 정치위원 가오강(高崗) 동지가 맡는다”고 통보했다. 이어 김일성에게 “(당시 북한 군사위원회 위원이었던) 박일우 동지를 선양(瀋陽)으로 보내 펑더화이와 가오강 두 명 동지와 만나 중국 인민지원군의 북한 진입과 전투에 유리한 모든 문제를 논의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마오쩌둥이 1950년 10월 8일 작성한 북한 파병 중국 인민지원군 조직 초안도 전시됐다. 특히 여기에는 “북한 인민의 해방 전쟁을 돕기 위해 미 제국주의와 주구의 공격을 반대하고 북한 인민과 중국 인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동북 변방의 군을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바꿔 곧 북한에 보낸다”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중국이 ‘지원군’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는 동북 지역의 정규군을 파병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전시에서 6·25전쟁에 파병한 중국군이 살상하거나 포로로 삼은 국군과 유엔군의 수를 71만 명이라고 밝혔다. 반면 중국군의 피해 규모는 36만6000명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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