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부추겨 재미 본 트럼프, 과격 지지자 ‘증오 테러’ 부메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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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선거 D-8 ‘위기의 트럼프’]폭탄소포 이어 유대교회 총기난사

촛불 든 추모인파 27일(현지 시간) 총기 난사로 11명이 희생된 유대교 회당(시너고그)이 위치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스퀴럴힐에서 주민들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총격범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더 극우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츠버그=AP 뉴시스
촛불 든 추모인파 27일(현지 시간) 총기 난사로 11명이 희생된 유대교 회당(시너고그)이 위치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스퀴럴힐에서 주민들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총격범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더 극우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츠버그=AP 뉴시스
미국 중간선거(11월 6일)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의 ‘증오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27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교 회당(시너고그)에서 40대 백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11명이 사망하고 경찰관 4명을 포함해 6명이 부상했다. 총격범인 로버트 보어스(46)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트럼프 대통령이 유대인을 배척하는 더 강경한 극우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남기고 범행을 저질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반(反)트럼프 진영 인사들을 겨냥해 ‘폭발물 소포 테러’를 기도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가 체포된 지 하루 뒤에 벌어진 참극이다.

반이민 정책 등 ‘분열의 정치’를 펼쳐 온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던 공화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형 악재를 만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총격범 “모든 유대인이 죽길 바란다”

“히브리이민자지원협회(HIAS)는 ‘우리 사람(our people)’들을 죽이려는 침입자들을 들여오고 있다. ‘우리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다. 행동 개시다.”

총격범 보어스는 이 같은 글을 자신의 SNS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범행을 감행했다. 그는 27일 오전 9시 45분경 피츠버그 도심에서 차로 10분가량 떨어진 유대인 밀집지역 앨러게이니 카운티의 트리오브라이프(Tree of Life) 회당에 AR-15 소총과 권총 3정을 소지하고 들어가 난사했다. 목격자들은 경찰에게 “범인이 총을 쏘기 전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 한다’고 외쳤다”고 말했다. 당시 이 회당에선 수십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이 이름 명명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은 오전 9시 54분에 첫 총격 신고를 받고 1분 뒤에 현장에 도착해 회당을 빠져나가려던 보어스와 총격을 주고받았다. 보어스는 다시 회당 안으로 들어가 경찰과 대치했으며 여러 발의 총격을 받고 체포됐다. 20분 동안 회당 안에 머무르며 범행을 저지른 보어스는 살인과 폭행, 인종차별적 협박 등 총 29개의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CNN에 따르면 그는 총격 이틀 전엔 “(백악관이) 유대인에게 감염돼 있는 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없다”고 적었다. 경찰 진술서에 따르면 보어스는 체포된 뒤 한 경찰 간부에게 “모든 유대인이 죽기를 원한다. 그들(유대인)이 ‘우리 사람’들을 집단학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최대 유대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의 조너선 그린블랫 대표는 트위터에 “유대인 커뮤니티를 겨냥한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반트럼프 진영 인사들에게 연쇄적으로 폭발물 소포를 보냈다가 소포에 지문이 묻는 바람에 전날 체포된 시저 세이약(56)은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세이약이 등록된 공화당원이며, 온라인에서 극우적 음모이론을 추구해온 열렬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라고 보도했다. 세이약의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에는 6월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며 “역대 최고의 업적을 낸 대통령”이라고 쓴 글이 올라왔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난하는 풍자성 이미지도 상당수 있었다는 것이다.

○ 중간선거 막판 최대 변수 부상

유대교 회당과 폭발물 소포 사건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대부분의 분석 매체는 여전히 민주당의 하원 과반 탈환과 공화당의 상원 과반 수성을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분열적 언행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주요 원인이라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공화당이 최근 하원에서 보인 약간의 상승세마저 꺾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인디애나주에서 열린 미래농업 관련 행사에 참석해 “증오로 가득 찬 반유대주의 독약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우리는 증오와 악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신속하게 입장을 밝혔다. 또 31일까지 백악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조기를 게양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피츠버그를 방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세실리아 왕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부국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자신을 ‘국수주의자’라고 부르고, 그의 유세 참가자들은 (유대인인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를 향해 위협적인 구호를 외친다. 이 같은 움직임과 (이번 사건은) 모두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뒤늦게 통합 메시지를 보내고는 있지만 그동안의 선동적인 언행이 소수 과격주의자들의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논란 확대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도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자가 (지난해) 야구장에서 공화당 의원을 총격했을 때도 샌더스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한기재 기자
#트럼프 과격 지지자#증오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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