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대통령 방한한다면… 노래방으로 안내할 생각이에요”

  • 동아일보

佛 마크롱의 최측근, 30대 한국계 세드리크 오-델핀 오 남매

지난해 세드리크가 근무하는 엘리제궁을 방문해 본관 현관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왼쪽 사진). 왼쪽이 아버지 오영석 전 교수, 
왼쪽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가 세드리크와 델핀, 가운데가 세드리크의 부인 베랑제, 그 앞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아기가 세드리크의 
아들 오성식이다. 사진 제공 델핀 오
지난해 세드리크가 근무하는 엘리제궁을 방문해 본관 현관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왼쪽 사진). 왼쪽이 아버지 오영석 전 교수, 왼쪽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가 세드리크와 델핀, 가운데가 세드리크의 부인 베랑제, 그 앞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아기가 세드리크의 아들 오성식이다. 사진 제공 델핀 오
“당신이 한국 사람이라서 삼성(사람) 데려온 거 아니야?”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손영권 삼성전자 최고전략책임자(CSO)와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웃으면서 옆에 앉은 한국인에게 농담을 던졌다. 그는 7년 전부터 마크롱 대통령과 친구처럼 지낸 디지털 경제보좌관 세드리크 오(한국명 오영택·36)였다. 지난해 대선 당시 마크롱 캠프의 회계 총책임자를 맡았던 그는 정책뿐 아니라 정치 조언도 하는 최측근이다.

세드리크의 동생은 여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소속의 파리 19구 하원의원 델핀 오(한국명 오수련·33).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고 마크롱 대통령과 가장 친한 한국인인 두 남매를 각자의 사무실이 있는 엘리제궁과 하원의사당에서 16일과 10일 각각 만났다.

○ 한국식 교육에서 익힌 ‘야망과 성실’

어린 시절 한복을 입고 리옹 집에서 찍은 세드리크와 델핀. 사진 제공 델핀 오
어린 시절 한복을 입고 리옹 집에서 찍은 세드리크와 델핀. 사진 제공 델핀 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요. 저는 한국 소년처럼 교육받고 자랐어요. 어렸을 때 동생이 공부를 너무 잘해서 성적표 가져올 때마다 걱정이 많았어요.”

세드리크는 “야망과 성실을 강조하는 한국 교육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강조하는 프랑스 교육을 둘 다 받은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남매의 아버지 오영석 전 KAIST 초빙교수(70)는 20일 전화인터뷰에서 두 자식을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로 키운 비결을 묻자 “부모도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않았다. 집에 TV를 없애고 저녁 내내 가족이 함께 책을 읽고 주말에는 무조건 도서관에 갔다”고 말했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책과 경험은 망루와 같아서 많이 쌓아서 높이 올라가야 멀리 보이고 그래야 예견하고 대비를 할 수 있다. 서로 읽은 책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지니 애들이 사춘기도 모르고 지나갔다”며 자녀교육 비법의 일부를 들려줬다.

○ 온 가족의 ‘한국 사랑’

이들 가족에게 한국은 각별하다. 세드리크의 생후 18개월 된 아들의 한글 이름은 오성식이다. 할아버지가 선택지로 준 한글 이름 4개 중 하나를 골랐다. 세드리크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일하던 동생 델핀을 만나러 한국에 왔다가 연세대에서 공부하고 있던 동생의 친구를 만나 결혼했다. 세드리크는 “부인은 프랑스 사람이지만 아버지보다 매운 것을 더 잘 먹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치렀고 지난해 바쁜 엘리제궁 생활 속에서도 휴가를 얻어 한국에서 아들 돌잔치도 했다.

세드리크의 운명 같은 결혼은 아버지의 결혼 과정과 비슷하다. 오 전 교수는 1973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다. 프랑스로 미사일 기술을 배우러 가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우다가 강사인 프랑스 선생님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 뒤 프랑스에서 터를 잡았다. 오 전 교수는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INSA) 교수를 거쳐 2004년 KAIST 초빙교수로 한국에 왔다.

세드리크와 델핀은 둘 다 연세대에서 한 학기 동안 한국어를 배워 한글로 초보 수준의 대화를 할 수 있다. 세드리크는 “한국어를 열심히 익히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며 “아들은 한국어를 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델핀은 지난해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여름휴가로 한국에 왔고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도 참석했다. 남매는 9월 아버지 칠순 잔치를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 프랑스 최고 엘리트 ‘영 리더’

세드리크 오 디지털 경제보좌관(왼쪽)이 지난해 5월 대선 승리가 확정되자 당시 후보였던 마크롱 대통령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세드리크 오 디지털 경제보좌관(왼쪽)이 지난해 5월 대선 승리가 확정되자 당시 후보였던 마크롱 대통령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세드리크는 1982년생, 델핀은 1985년생이다. 30대의 젊은 나이지만 40세의 젊은 대통령과 함께 일하는 이들은 프랑스 최고 엘리트로 다양한 경험을 갖췄다.

세드리크가 마크롱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7년 전인 2011년이다.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선 캠프에서 보좌진으로 함께 만났다. 이후 마크롱은 엘리제궁 경제 보좌진으로, 세드리크는 재무장관 보좌관으로 함께 경제 정책을 논의하다 친구 사이가 됐다.

세드리크는 2006년 프랑스 최고 비즈니스 스쿨인 HEC를 졸업한 뒤 친구의 권유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후보를 도와 사회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면서 일찌감치 정치에 발을 디뎠다. 2016년 마크롱 대통령의 요청으로 ‘앙마르슈’ 창당 멤버로 합류했고, 지난해부터 엘리제궁에서 대통령과 총리의 디지털 경제 정책을 보좌하고 있다. 지난달 말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인공지능(AI) 육성 정책 발표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세드리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디지털 분야의 독자적인 기술 개발과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국가가 전 세계에 프랑스 한국 독일 등 몇 개 되지 않는다”며 “디지털 분야는 역설적으로 독립적인 국가 주권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도 한국과 프랑스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선 캠프에 함께 합류한 동생 델핀은 앙마르슈 최고의 국제관계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프랑스-이란 의원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중동 전문가다. 델핀은 프랑스 그랑제콜을 나온 뒤 베를린 자유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거쳤고 미국 싱크탱크, 주미·주한 프랑스 대사관, 외교 관련 온라인 언론 공동 창업 등 경험도 다양하다.

델핀 오 하원의원(파리 19구 지역구)이 10일 국회의사당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본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델핀 오 하원의원(파리 19구 지역구)이 10일 국회의사당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본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델핀은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의원 연임을 최대 3선으로 제한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델핀은 “국회의원은 일을 하는 자리”라며 “오래 하면 부패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란 핵 협상 전문가인 델핀은 북핵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이미 두 차례 북한을 다녀왔다.

“2007년과 2014년 두 차례 북한에 갔을 때 받은 느낌은 슬픔이었어요. 국민들이 희망이 없었죠. 핵개발이 워낙 진전되어 있어서 제로베이스로 되돌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단절보다는 대화가 늘 좋은 전략입니다.”

델핀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협상팀에 조언을 부탁하자 ‘당신의 위치는 항상 적의 신발 속에 있어야 한다’는 속담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상대방이 겉으로 위협과 공격성을 보여도 과잉 해석을 하지 말고 상대의 시선으로 늘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드리크는 마크롱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 동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인 입양아 플뢰르 펠르랭 장관이 장관 자격으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밤에 홍대 노래방에 데려갔는데 정말 좋아했어요. 마크롱 대통령도 한국을 방문하면 노래방을 데려갈까 생각 중입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마크롱#세드리크 오#델핀 오#한국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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