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에 풀려난 후지모리… 페루 국민들 찬반 충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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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 않겠다는 대선공약 어겼다”… 반대파, 쿠친스키 대통령 퇴진 요구
쿠친스키 탄핵, 의회서 8표차 부결… 후지모리 아들과 정치적 거래說

독재자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79·사진)에 대한 사면 결정에 페루 사회가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다.

정적 살해, 부패 등의 혐의로 25년형을 받은 그가 12년 만에 풀려나 다시 얼굴을 드러내자 국민적 분노가 일고 있다. 후지모리의 ‘콘크리트’ 지지자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찬반 시위가 맞서고 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병상에 앉아 “나의 정부가 한편으로는 좋은 결과를 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포들을 실망시켰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를 통치했던 후지모리는 2005년 체포돼 25년형을 선고받았다. 페루 법에 따르면 살인이나 납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불치병이 아닌 경우 사면받을 수 없다. 형기를 모두 채우면 93세에 석방되지만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은 24일 특별사면을 전격 결정했다. 반대자들은 “후지모리를 사면하지 않겠다”는 대선 공약을 어겼다며 쿠친스키 대통령 퇴진까지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은 후지모리의 아들인 겐지 후지모리 민중권력당(FP) 의원(37)과 쿠친스키 대통령의 정치적 밀거래 결과물로 보고 있다. 쿠친스키 대통령은 브라질 건설사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21일 의회에서 탄핵 심판을 받았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탄핵이 통과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표결은 8표 차로 부결됐다. 겐지 의원과 그를 따르는 의원 9명이 불참해 기권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쿠친스키 탄핵을 주도한 사람은 후지모리의 장녀이자 겐지 의원의 누나인 게이코 후지모리 FP 대표(42)였다. 지난해 6월 대선에서 불과 0.3%포인트 차로 쿠친스키 대통령에게 패배한 게이코는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다.

후지모리 부녀는 여러모로 박정희 박근혜 부녀와 닮았다. 후지모리는 집권 후 경제개발에 성과를 내 아직도 지지하는 국민이 많다. 반면 의회 해산, 장기독재를 위한 개헌, 정적 학살, 부정부패 등 전형적인 독재자의 면도 골고루 보여주었다.

게이코는 19세 때인 1994년부터 이혼해 홀몸이 된 아버지 옆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하며 정치수업을 했고, 아버지가 수감된 뒤 정치에 뛰어들어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가 됐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알베르토 후지모리#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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