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푸틴 만나 ‘선거 개입’ 경고… 메이 “지독히 어려운 여자 될 것” EU 압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올해 정권의 운명을 건 선거를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해외 정적을 활용해 국내 득표력을 높이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메르켈은 9월 총선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선거 개입을 하지 말라고 은연중에 경고했다. 하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동력 확보를 위해 6월 조기 총선 승부수를 띄운 메이는 협상 대상인 EU의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을 향해 강경한 협상 태도를 천명했다.

메르켈은 2일 러시아 소치에서 푸틴과 2년 만에 가진 2시간가량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미국과 유럽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견해를 직접 물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독일의 9월 선거에 러시아가 개입하지 말 것을 돌려서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은 “우리는 절대 외국 선거에 개입하지 않고, 외국이 우리 선거에 개입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메르켈은 러시아의 군사 독트린에 전통적 군사력과 가짜 뉴스 등 사이버 공격을 가미한 ‘하이브리드 전쟁’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차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메르켈은 러시아 언론이 베를린에 사는 13세 독일 소녀가 난민에게 납치돼 실종된 사건을 독일 정부가 은폐하려 했다는 가짜 뉴스를 예로 들며, 이런 움직임이 감지되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독일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 분쟁과 시리아 사태 등에 대해 논의했지만 확고한 의견차만 확인하고 그다지 성과 없이 끝났다. 메르켈은 이런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푸틴과 만난 건 국내 유권자에게 정부가 EU 최대의 적인 러시아와 꾸준히 대화할 의지가 있고 민감한 현안을 피하지 않는다는 걸 각인시켜 주려는 목적에서였다고 FT는 분석했다.

브렉시트 선언 이후 EU 탈퇴금 600억 유로(약 75조 원)를 두고 EU와 설전을 벌여온 메이는 2일 BBC 인터뷰에서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지독하게 어려운 여자(bloody difficult woman)가 되겠다”며 강경한 협상 자세를 천명했다. 막대한 탈퇴금이 걸린 협상에서 영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을 유권자에게 각인시켜 조기 총선에서 국내 결집력을 노리려는 계산이다.

메이는 지난달 27일 영국 런던에서 융커 위원장, 미셸 바르니에 EU 집행위 브렉시트 협상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탈퇴금 600억 유로를 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며 갈등을 빚었다. 융커가 회동 직후 “전보다 10배는 더 회의적인 상태로 다우닝가(총리 집무실)를 떠난다”고 말했을 정도다. 메이의 강경한 태도에 융커가 메르켈에게 전화를 걸어 “메이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뒷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메르켈#푸틴#eu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