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사진)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실리 외교’를 펼치며 몸값을 높이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나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초청 제안에 대해 1일 “러시아도 가야 하고 이스라엘도 가야 한다”며 “어떤 확답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통적 친미 국가인 필리핀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자신의 방미를 놓고 미국 내 인권단체들이 마약 단속을 이유로 수천 명을 살해한 ‘집단살해 지휘자’를 초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상황을 명분으로 삼았다.
지난해 6월 취임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임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 시절까지 지속된 친미 일변도 외교를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테르테 실리외교의 대표적인 수혜국은 중국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마닐라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의장국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남중국해의 인공섬 건설과 군사기지화 문제를 공동 성명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중국의 체면을 살려준 셈이다.
1일에는 자신의 고향인 남부 다바오 시를 방문한 중국 군함 ‘창춘(長春)’함에 올라 참관하고 양국 연합 군사훈련 의향도 밝혔다. 지난해 6월 말 취임 이후 미국과의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한 것과 대비된다. 중국 군함이 필리핀을 찾은 것은 7년 만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 후 가진 필리핀 언론 인터뷰에서 “(5월 중순)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정상회의 때 중국의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2일 사설에서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로 필리핀은 중국에서 큰 물질적 이득을 얻을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도 중시를 받는 ‘필리핀 모델’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반면 한국은 정반대 사례”라며 “2년 전만 해도 한중 관계는 절정에 달했으나 2016년 갑자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선언한 뒤, 한국은 중미 양국으로부터 외교적 이익을 얻을 위치에서 미국으로 완전히 기울었다”고 깎아내렸다. 한마디로 한국에 필리핀을 배우라는 충고를 한 셈인데 두 나라의 안보 상황과 경제 규모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억지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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