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룬힐데 폼셀이 무려 10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폼셀은 독일 나치의 선전을 담당한 요제프 괴벨스의 여비서로서 격동의 19세기를 함께한 역사의 산증인이었습니다.
#.3 그는 생전 독일의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나치 선전활동의 최전선에 있었음에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4 당시 나치에 가입했던 것은 순전히 방송국 취업을 위해서였다는 것이었죠. 또한 나치의 나팔수로 불린 괴벨스의 여비서로 일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을 잘 알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5 그는 유대인학살(홀로코스트)도 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알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2011년 이 인터뷰가 있기 전까지 폼셀은 주목받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내고 있었죠.
#.6 하지만 인터뷰 이후 나치 수뇌부의 마지막 생존자로 큰 관심을 받게됩니다. 이후 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공개된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 폼셀은 좀 더 자세하게 나치에서 일했던 모습을 증언하게됐죠.
#.7 폼셀은 괴벨스의 개인 비서이자 나치 당원이었지만 평범하고 선량한 독일인이었다고 회상했죠. 나치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 지는 당시 대부분의 독일인이 그랬듯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알게됐다고 말했습니다.
#.8 폼셀의 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대공황까지 여러 악재가 겹쳤던 당시 독일 국민에게 히틀러는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설파하며 강력한 독일 재건을 외치는 독일의 희망이자 태양이었습니다.
#.9 현혹된 국민들은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했지만 정작 나치의 실상을 알진 못했죠. 폼셀의 말이 일견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10 "몰랐기 때문에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죄가 있다면, 나치 권력이 집권하게 만든 모든 독일 국민의 책임이고 잘못" -폼셀 인터뷰 중
하지만 몰랐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진실과 마주해 책임을 피하지 않아야 잘못된 과거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11 실제 독일은 당시 전쟁을 묵인하고 나치에게 엄청난 권력을 준 것에 대해 국제사회에 사죄의 뜻을 전하고 재발방지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쟁 이후 유럽의 주변국들이 독일을 인정하고 경제공동체를 꾸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12 106세 독일 할머니의 덤덤한 자기 고백은 이제는 "전쟁과 파시즘의 위협을 제대로 극복했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집니다. 폼셀의 증언은 그 믿음이 착각일 수 있다는 일종의 메시지인 셈이죠.
#.13 우리는 잘못된 과거사를 외면하려는 일본의 태도를 지적합니다.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입니다. 폼셀의 덤덤한 회상은 어쩌면 우리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주는 역사적 사례가 아닐까요. 기획·제작: 김재형 기자·김유정 인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