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손효림]재미교포 독자의 항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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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기자
손효림 문화부 기자
독자의 e메일은 몇 번씩 읽어본다. 기사에 대한 공감이든 항의든, 메일 주소를 찾아 의견을 보내는 마음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사에 대해 항의(혹은 지적)하는 60대 재미교포 남성의 메일을 받았다. 미국의 흑인 저널리스트가 흑인 차별에 대해 15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책 ‘세상과 나 사이’에 대한 서평 기사(10일자 17면)를 읽고 메일을 보내왔다.

이 독자는 기사가 감상적이고 편파적이라고 했다. 기사에는 책 내용을 인용해 담배를 훔치다가 혹은 장난감 총을 지녔다가 경찰의 총에 숨진 흑인들의 사례와 엽궐련을 훔친 흑인 소년을 쏘아 숨지게 한 경찰이 기소되지 않자 저자의 아들이 눈물을 흘린 이야기 등이 거론됐다.

올해 41세인 저자는 어릴 때 백인 소년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총을 겨눴고 흑인인 대학 동기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경험을 했다. 미국에서 흑인은 쉽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자신의 딸이 미국에서 주검사를 지냈다는 재미교포 독자는 미국의 검사는 엄정하게 기소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판사들은 잘못 선고하면 낙선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들 판결에 순응한단다. 최근 흑인들이 숨진 사건은 경찰이 과잉 대응했을 수 있지만 정당한 매뉴얼에 따른 것이었다고 했다. 흑인들이 진짜 권총 같은 장난감 권총을 경찰에게 겨누었고, 물건을 훔치다 서라는 경찰의 명령에 불응해 도망가다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기자는 미국에서 산 적은 없지만 공권력이 철저히 존중된다는 것은 안다. 시위를 하다 경찰 통제선을 넘으면 연방 하원의원도 수갑을 채워 연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이 경찰에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이어지고 이에 대한 항의가 들끓는 이유를 살피려면 법절차의 공정성만 따지기보다는 흑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주장이 과격한 측면은 있지만 그가 직접 겪은 일은 흑백 갈등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단순히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처리된 사안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 독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비하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독자를 오도하는 기사를 쓰려면 아예 작가로 나서라’ ‘술 마시러 다니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하라’는 말은 접어두고 싶다. ‘미국의 판사는 한국의 정신 빠진, 달달 외우기 고시해서 판사가 된 사람들과 다르다’ ‘미국의 검사는 한국의 부정한 검사들이 아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기자들은 거기에 아부하는 기생이 될까. 대비하라’는 표현을 보며 씁쓸했다. 법조인, 언론인의 비리가 연일 보도되고 있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한국의 제도와 법조인, 언론인 전체를 매도하며 내리깔아 보는 시선에서 일말의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를 통해 미국 백인 중심의 시각이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는 점에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재미교포#흑인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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