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항로’ 키 잡은 메이 내각 절반 여성으로 채울 듯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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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26년만의 여성총리 취임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이 13일 영국의 54번째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영국병’에 걸린 늙은 제국을 회생시켜야 했던 마거릿 대처 총리에 이어 26년 만에 여성 총리 자리에 올랐다. 메이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후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해야 하는 역사적인 과업을 떠안게 됐다.

입헌군주제 형태를 띠는 만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추인을 거치는 총리 이취임 행사는 어느 때보다 엄숙하게 치러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영국 의회에서 마지막 질의응답을 마친 뒤 버킹엄 궁을 찾아 여왕에게 보수당 대표 메이 장관을 차기 총리로 추천했다.

여왕이 캐머런 총리의 사퇴를 허락한 순간 형식적으로 총리 없는 공백 상태에 빠져 제러미 헤이우드 행정장관이 잠시 총리를 대행하는 절차도 거쳤다.

이어 메이 장관이 버킹엄궁을 찾아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추면서 공식적으로 총리 자리에 올랐다. 차와 버번위스키를 곁들인 두 사람의 대화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메이 총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맞는 13번째 총리다. 여왕은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를 임명하는 티타임 자리에서 “내가 여왕 자리에 올랐을 때 윈스턴 처칠이 총리였고 당신은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특히 대처에 이은 두 번째 여자 총리를 맞는 여왕의 속내도 언론들의 관심거리다. 역대 총리와 두루 사이가 좋았던 여왕이지만 대처와는 불편한 관계였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서로가 그렇게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을 상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메이 총리는 방탄 재규어 차량에 올라타 오토바이를 탄 4명의 경호 인력과 함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 도착해 취임 연설을 했다.

영국 언론들은 공통적으로 메이 신임 총리가 △브렉시트 △무역 △이민 등 세 가지 주요 난제(trident)에 봉착해 있다고 보도했다. 이민은 억제하되 EU 단일시장은 유지해야 하는 브렉시트 협상을 끌어내야 하는 것이 숙제다.

메이 총리의 측근인 필립 해먼드 영국 외교장관은 “EU와 협상을 완료하는 데 최소 6년이 걸릴 것”이라며 “협상이 이뤄지는 동안 양자무역 협상이 타결되긴 어렵다”는 고충도 토로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부서를 별도로 만들어 협상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메이 총리가 꾸릴 내각은 여성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철의 여인’ 대처 총리가 자신의 내각을 모두 남성으로 채운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메이 총리의 대변인은 그동안 “메이는 여성 의원들이 정부에 더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 왔고 선거 기간 여성 의원들을 주요 자리에 포진시켜 왔다”고 밝혔다.

영국 언론계에서는 전체 내각의 3분의 1인 7명을 포진시킨 현재 캐머런 내각과 최대 여성 장관 8명을 포진시켰던 블레어 내각을 넘어 절반까지 여성으로 채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가장 관심인 재무장관 자리도 여성이 차지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메이 총리와 선거를 함께 치른 앰버 러드 에너지기후변화장관이 메이 총리가 맡았던 내무장관 혹은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캐머런 전 총리는 두 번째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지역구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총리 6년, 보수당 대표 10년을 했지만 캐머런 전 총리의 나이는 이제 50세로 1895년 얼 로즈베리 이후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가장 젊은 총리가 됐다. 캐머런 전 총리는 이날 국회 마지막 질의응답 전 “잠시 후 있을 여왕과의 만남을 제외하면 나의 오늘 남은 일정은 매우 한가할 것이다”라는 농담을 하는 여유도 보였다. 메이 총리는 캐머런 바로 뒤에서 이 농담을 들으며 환하게 웃었다. 함께 잔류 진영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이끌었던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캐머런 총리의 노고에 감사하다”며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브렉시트#메이#여성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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