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손잡나 했더니… ‘손봐준’ 사우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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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대신 왕자가 공항 영접… CNN “오바마 모욕 당했다”
의장대-국가연주 없는 ‘약식 의전’… 양국 최근 불편해진 관계 ‘상징’
정상회담후 “동맹 재확인” 발표

20일 오후 1시경.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인근 킹칼리드 공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태운 ‘에어포스 원’이 멈춰 서자 붉은 카펫이 깔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열리는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담 등에 참석하기 위해 임기 중 네 번째로 사우디를 찾았다. 사실상 대통령으로선 마지막 사우디 방문이기도 하다.

트랩 아래엔 이날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없었다. 대신 리야드 주지사인 파이살 빈 반다르 왕자가 아델 알 주바이르 외교장관과 리야드 경찰서장 등 4명과 오바마 대통령을 맞이했다.

주요국 정상이 방문할 때 살만 국왕이나 무함마드 빈 나예프 알사우드 왕세자가 직접 공항에서 영접하는 전례를 감안하면 엄청난 홀대였다. 같은 날 오전 이 공항에 도착한 바레인 쿠웨이트 등 GCC 참가국 정상들은 살만 국왕이 직접 영접했다.

공항 의전도 단출했다. 양국 국가는 연주되지 않았고 왕실 의장대도 보이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멋쩍은 표정으로 파이살 왕자 등과 가벼운 악수만 했다. 통상 사우디에선 반가움의 표시로 악수를 한 뒤 양쪽 볼에 키스를 하지만 이날은 악수뿐이었다. CNN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8년 사우디 방문 때 공항에서 국왕에게 키스 세례를 받았다”며 “백악관은 부인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사우디로부터 모욕을 당했다”고 전했다. 주요국 정상 도착 장면을 생중계하던 국영 사우디TV는 이날 오바마 대통령 도착 장면을 라이브로 내보내지 않았다.

이날 킹칼리드 공항에서 벌어진 10여 분간의 이례적인 의전은 양국 간의 불편한 관계를 그대로 보여줬다. 미국은 사우디가 같은 수니파인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적극적이지 않고 안보에선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사우디는 2011년 ‘아랍의 봄’ 때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붕괴를 미국이 모른 체하더니 중동패권을 놓고 자신들과 경쟁하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핵협상을 갖고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여기에 최근 미 의회가 9·11 테러범과 사우디 왕가 및 정부, 기업의 연계 의혹을 법정에서 다룰 수 있게 이들에 대한 면책특권을 해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갈등은 절정에 이르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살만 국왕과 2시간 반가량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백악관은 회담 후 성명을 내고 “양국 간의 역사적인 우정과 뿌리 깊은 전략적 파트너십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성명은 “이란과 예멘, 시리아 문제 등 (그간 양국이 이견을 보여 온) 중동 지역의 주요 의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혀 여전한 균열을 시사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오바마#사우디#약식 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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