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탱고는 오바마의 치명적 실수” 비판,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5일 15시 25분


“야구와 탱고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치명적 실수다.”

미국의 중립적인 정책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24일(현지 시간) MSNBC 방송에 출연해 오바마 대통령이 벨기에 브뤼셀 테러 참사 직후 순방국인 쿠바에서 야구를 관람하고,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를 춘 것을 이렇게 비판했다.

하스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즉시 귀국하지 않고) 순방 일정을 계속 진행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탱고 추는) 작은 사진 하나하나까지 매우 주의해야 했다. 야구와 탱고는 테러의 심각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스 회장의 오바마 대통령 비판은 상대적으로 점잖은 편이다.

폭스뉴스 같은 보수언론이나 공화당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야구와 탱고’에 대한 야유와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테러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브뤼셀과 여자 댄서와 ‘진한 탱고’를 추는 오바마 대통령 모습을 합성한 사진이 나돌고 있다.

보수적인 정치 칼럼리스트인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미국 대통령인 당신은 미국을 대표한다. 당신의 이미지가 곧 미국이다. 그런 당신이 다른 사람들이 (테러 참사 때문에) 오열하고 있을 때 그렇게 춤을 출 수는 없다”고 비난했다.

폭스뉴스 앵커들도 번갈아가며 “미국이 9·11테러를 당했을 때 유럽의 우방들은 미국 국가를 연주하면서 ‘유럽은 미국과 함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지금은 ‘미국이 유럽의 아픔을 함께 한다’는 걸 보여줘야 할 차례다. 그런데 당신은 브뤼셀 테러로 유럽이 울고 있을 때 야구장에서 파안대소하고, 즐겁게 탱고를 추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난해 파리 테러 때도 미국 대통령이 안 보이더니, 이번 브뤼셀 테러에서도 여전히 안 보인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1월 11일 파리에서 34개 국 정상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테러 규탄 거리 행진’을 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이 불참한 것을 다시 꼬집은 것이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주자들인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 테드 크루즈 연방 상원의원,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 등은 “미국 국민들은 테러의 공포에 떨며 자신들을 이끌어줄 리더십을 찾고 있는데 대통령은 지금 어디 있느냐”며 순방 일정을 중단하거나 축소해서 조기 귀국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에 과잉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테러범들 손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는 23일 아르헨티나에서 가진 기자회견 등에서 “테러로는 우리의 일상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공포에 떨지 않고 그들(테러범)에 맞서는 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강하고, 우리의 가치가 옳다는 것을 흔드림 없이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대응방식은 공화당 정부와 다른, 근본적인 국정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9·11 테러를 겪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테러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국정의 중요한 축으로 삼은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대(對)테러 정책에서 뜨거운 감정(가슴)보다 차가운 이성(머리)을 우선시 한다는 얘기다.

한 정치역사학자는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그런 기조에 장점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은 ‘대통령이 우리의 감정, 우리의 두려움과 의구심을 헤아려주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테러 집단을 겨냥한 오바마 대통령의 차분한 대응은 테러 피해를 당한 유럽 시민들뿐만 아니라 그 공포감을 함께 느끼는 미국 시민과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여겨질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의 보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야구장에서 부인 미셸 오바마과 두 딸 등과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응원하는 장면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상세히 소개하면서 ‘무슨 테러 공격이 있었나요?’라는 제목을 달았다. 초상집 분위기의 유럽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미국 대통령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한 셈이다.

뉴욕=부형권특파원 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