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트위터로 조용한 출마 선언 ‘중산층 지킴이’로 전략 수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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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역사상 첫 여성대통령 꿈꾸는 힐러리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68·사진)이 2016년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다시 대권 도전에 나섰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통틀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클린턴 전 장관이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워싱턴 정가는 급속히 대선 정국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전 장관은 12일 트위터에 공개된 온라인 동영상을 통해 “2016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미 언론들은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클린턴 전 장관이 이번에는 다른 선거 전략을 들고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 귀족 정치인 이미지에서 중산층 지킴이로

클린턴 전 장관은 2008년 경선에서 패한 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살생부’까지 작성해 가며 분루(憤淚)를 삼켰다. 그러다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2009년부터 4년간 국무장관을 지내면서 대통령직 수행에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외교 안보 현안과 행정 경험을 쌓았다. 그래서인지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클린턴 전 장관이 이번 대선에선 전혀 다른 선거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클린턴 전 장관 측은 이를 ‘힐러리 2.0’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그가 내건 새로운 선거 전략의 핵심은 귀족 정치인 이미지를 벗고 중산층을 보듬으며 밑바닥 표심을 잡는 이른바 ‘로 키(low key)’ 전략인 것으로 전해졌다. 화려한 출정식을 피하고 출마 선언으로 ‘트위터’를 활용한 것도 중산층과 미래 세대인 젊은 유권자층을 껴안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일대 법학대학원 출신 변호사, 40대 백악관 안주인,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 등 화려한 길을 걸어왔던 클린턴 전 장관은 2008년 대선에서는 ‘이기기 위해 대선 판에 왔다(I’m in it to win it)’는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미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꿈꿨다. 당시 그가 내건 구호는 ‘힐러리 대세론’을 강조한 것이었지만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어투와 이를 반영한 공격적인 선거 전략으로 일부 중산층과 흑인 위주 민주당 지지층의 반감을 형성했다는 게 중론이었다. 실제로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 점을 파고들어 힐러리 대세론을 꺾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클린턴 전 장관은 이번 선거에서 2009년 금융위기 후 여전히 먹고살기 어려운 중산층을 보듬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라며 “선거 유세도 대규모 행사를 자제하고 당분간 서민들과의 타운홀 미팅을 중심으로 꾸려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가 내걸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기업의 세금 탈루 방지와 중산층 감세 △근로자와 이익을 공유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등이 거론된다.

클린턴 전 장관은 출마 선언 후 첫 행선지로 2008년 경선에서 패배가 확정된 아이오와 주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선거 전략 전문가인 조 트리피 씨는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번 패배가 확정된 곳에서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과연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2008년과 달리 민주당 내 뚜렷한 경쟁자가 없는 만큼 클린턴 전 장관의 민주당 내 경선 통과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가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민주당 지지층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민주당 주자 중 클린턴 전 장관의 지지율은 69%로 공동 2위인 조 바이든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상 12%)을 큰 폭으로 제쳤다. 선거 자금 모금도 지금까진 파란불이다. 폴리티코는 최대 20억 달러(약 2조1876억 원)대의 선거 자금 마련이 무난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정책과 선거 전략은 백악관 선임고문을 지내다 2월 ‘힐러리 선거캠프’로 간 ‘원조 클린턴맨’인 존 포데스타 씨가 총괄할 계획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공개적인 지지를 보냈다. 11일 파나마에서 열린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의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특히 외교정책에 관한 한 어떤 대화도 잘 다뤄 나갈 능력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힐러리 대세론에 숨어있는 복병들도 있다. 공화당은 클린턴 전 장관의 출마 선언에 맞춰 ‘스톱 힐러리(Stop Hillary·힐러리는 이제 그만)’ 캠페인을 조기에 시작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WP가 전했다. 우선 클린턴 전 장관의 국무장관 시절 가장 큰 외교적 실패로 꼽히는 2012년 리비아 벵가지 테러 사태를 놓고 ‘힐러리 때리기’를 본격화할 태세다. 최근 국무장관 시절 개인 e메일을 공무에 사용한 논란이나 클린턴 전 장관 입장에선 지긋지긋한 ‘르윈스키 스캔들’도 선거 국면에서 언제든 부상할 수 있다.

나이가 많다는 점도 걸린다. 집권할 경우 70세로 비교적 고령인 데다 그동안 워낙 대중에게 오래 노출되어 있다 보니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다 보니 민주당 일각에서는 신선한 ‘개혁 아이콘’으로 여성 상원의원인 워런 의원 띄우기가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한편 클린턴 전 장관의 외교 안보 공약 중 한반도 관련 정책은 오바마 정권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 스스로가 국무장관으로서 오바마 정권 1기 외교 안보 이슈를 총괄한 데다 최근 주요 대북 이슈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과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중동 및 우크라이나 사태 등 다른 국제 이슈에 대해서는 미국의 역할을 보다 강조하는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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