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式 ‘역사 바로 세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03시 00분


식민지배 英과 싸운 간디 동상, 의회 광장에 세워
처칠 동상과 나란히… 캐머런 “영원한 집 드린 것”

영국 런던 도심 한복판에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 세워졌다. 14일(현지 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 의회 광장에서는 인도 전통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인도 전통의상 도티를 입고 고개를 조금 숙인 모습으로 사색에 잠긴 듯한 얼굴을 한 청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2.74m의 청동상은 스코틀랜드 태생 조각가 필립 잭슨이 1931년 인도 독립을 논의하기 위한 런던 원탁회의에 참석한 간디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룬 자이틀레이 인도 재무장관이 동상을 덮고 있던 주황색 천을 벗기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 500여 명의 참석자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캐머런 총리는 동상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간디의 친손자인 인도 정치인 고팔크리슈나 간디 씨의 모습도 보였다.

2015년인 올해는 비폭력저항운동의 상징인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변호사로서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하다 1915년 고향인 인도로 돌아간 지 100년 되는 해. 캐머런 총리는 축사에서 “동상 제막은 세계 정치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명에 대한 헌사”라며 “생전에 간디는 인도가 아닌 곳에 산다면 런던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오늘 우리는 그에게 런던의 영원한 집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너 자신부터 바꿔라’는 간디의 명언을 낭독하기도 했다.

간디의 동상은 생전에 간디를 비하하며 인도의 독립을 막으려 했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동상과 불과 수십 m 거리에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자이틀레이 장관은 축사에서 “생전에 처칠 전 총리는 간디를 향해 ‘총독부 청사 계단을 반나체로 성큼성큼 걸어 오르는, 흔해 빠진 유형의 고행 수도사 노릇을 하는 선동적인 미들 템플(영국 법학회)의 변호사’라는 말까지 했었다”며 “그랬던 처칠 전 총리와 함께 간디 동상이 서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처칠 전 총리는 단식투쟁하는 간디를 향해 “굶어 죽었으면 좋겠다”고 막말을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런던 의회 광장에는 두 사람의 동상 외에도 에이브러햄 링컨과 넬슨 만델라 동상이 함께 서 있다. 동상 제작에는 100만 파운드(약 17억 원) 넘게 들어갔으며 간디동상기념재단에서 기부금을 모아 마련했다고 한다. 한편 간디 타계 60년 만에 동상이 선 것에 대해 BBC는 “영국 정치인들이 인도 유학생과 대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구애를 하고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