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야권 지도자였던 보리스 넴초프를 살해한 용의자로 체첸 출신 인물이 지목되자 러시아 야권 인사들은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암살된 러시아 야권 인사들을 저격한 사람들이 대부분 체첸 출신이었고, 거의 모든 사건이 미궁에 빠졌는데 이번 사건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 일반 청부 살해 사건도 ‘깜깜’
러시아에선 일반인에 대한 청부 살해 사건도 살인 교사범을 붙잡기 어렵다. 살인 청부에서 실행까지 범죄 집단이 점조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진범을 잡아낼 확률이 1%도 되지 않는다고 범죄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만 교사범이 붙잡힌 몇몇 사건에서만 범죄 조직이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진상이 밝혀진 사건은 무려 9년 전인 2006년 9월 안드레이 코즐로프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 청부 살인으로 청부 살해 의뢰자→소개 및 중개업자→폭력조직→킬러에 이르는 범죄 가담자들이 모두 붙잡혔다.
당시 범인들은 모스크바 북부에서 코즐로프를 사살했으나 아마추어 킬러를 고용한 바람에 덜미가 잡혔다. 총기를 난사한 범인 중 1명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승용차를 몰고 범행 현장에 접근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 이 킬러는 폭력조직 두목으로부터 5000 달러를 받고 살해를 시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두목을 살인 교사범에게 소개한 인물은 식당 여주인이었다. 코즐로프를 죽이라고 시킨 사람은 사설금융기관을 운영하던 알렉세이 프렌켈 VIP은행장으로 중앙은행에서 금융업 인가가 취소되자 앙심을 품고 청부살해를 의뢰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렇게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경우는 러시아에서 매우 드물다. 특히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엔 정치적인 목적에서 자행된 청부 살해 사건들 대부분이 실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는 즉시 청부 살해 의뢰자부터 킬러까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 ‘체첸 블랙홀’로 공포 정치 부활 우려
이번 넴초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체첸 공화국 전 경찰 특공대 부(副)대장 자우르 다다예프로 알려지고 있다. 모스크바 언론들은 그가 경찰에서 “넴초프를 향해 총을 직접 쐈다”고 자백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 범죄 전문가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10일 모스크바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살해는 매우 정밀한 계획 하에 이뤄졌다. 다다예프는 가장 낮은 단계의 실행자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러시아 경찰이 체첸인 수사에 들어가자 넴초프의 동료인 일야 야신 씨는 과거의 미제 사건들을 떠올리며 “최악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04년 포브스 모스크바 지국 기자였던 폴 흘레브니코프 씨가 죽었을 때에도 유력한 용의자로 체첸인 3명이 체포됐지만 증거 부족으로 풀려나면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2006년 10월 반 푸틴 신문인 노바야가제타 여기자 안나 폴릿코프스카야가 살해되었을 때에도 러시아 경찰은 5년 뒤인 2011년 체첸 출신의 총잡이를 범인으로 붙잡았으나 배후는 밝혀내지 못했다.
체첸 공화국은 이슬람 반군들 때문에 당국이나 언론이 용의자를 추적하거나 범행 모의 등을 확인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용의자 일부가 드러나도 수사 도중 진술을 뒤바꾸면 진상 규명도 도마뱀 꼬리 잘리듯이 흐지부지된다. 넴초프 사건도 이런 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다다예프의 살해 동기를 넴초프의 샤를리 에브도 옹호 발언 때문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게릴라 부대원 출신인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도 다다예프를 “독실한 이슬람교도로 러시아 애국자”라고 추켜세우며 종교적인 이유로 그가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에 대해 앞서 언급한 범죄전문가 솔다토프는 “사건 배후 조사를 막는 매우 편리한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에서는 권력에 대항하거나 그 비밀을 알면 누구나 청부 살해될 수 있고, 교사범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스탈린식 공포 정치가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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