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대학교 ‘집단 성추행’ 영상, 여학생 옷차림이 문제?

  • 동아닷컴
  • 입력 2014년 3월 27일 0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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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대학교 캠퍼스에서 남학생들이 밝은 색상의 옷을 입은 금발 여성을 상대로 집단 성추행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전국적인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금발 여성이 분홍색 긴팔 상의에 몸에 붙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다. 이 여성이 캠퍼스에 나타나자 순식간에 수많은 남학생이 그녀의 주위를 에워싼다. 이들은 휘파람을 불어대며 난처해하는 여성을 향해 야유를 보낸다. 성희롱에 가담한 일부 남학생은 법대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反)성희롱 단체 ‘나는 성희롱을 목격했다(I saw harassment)’의 회원 파티 파리드 씨는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남학생들이 피해 여성에게 언어적 폭력을 가하고 옷을 벗기려고 했다고 말했다.

카이로대학교의 가베르 나사르 학장은 현지 방송 ONTV와 인터뷰에서 “(전통에서 조금 벗어난) 여학생의 옷차림이 사실상 성희롱을 야기했다”는 발언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남학생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25일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카이로대학교의 여학생 대부분은 신체가 노출되는 의상을 피하고 평범한 바지와 상의를 입는다. 상당수 여학생은 이집트 여성이 대개 그러하듯 히잡(이슬람식 머리 스카프)을 쓴다.

나사르 학장은 자신의 발언이 도마에 오르자 트위터에 “오해하게 해서 사과드린다”며 “(성희롱 가해) 남학생들은 엄격히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어 “제일 나쁜 건 성희롱을 정당화하고 피해자를 탓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을 접한 일부 외국 누리꾼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한 누리꾼은 이집트에서 여성이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난 이집트의 한 병원에서 일했는데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 등 주목을 끌 수 있는 밝은 색상의 옷은 입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집트 여성들은 대개 검은색, 짙은 갈색, 흰색 등의 옷을 입는다. 이집트 남성들이 조금 마음을 열고 여성을 존중하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몇몇 누리꾼들은 외국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쾌한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집트 샤름 엘 세이크에서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지역인 데도 불구하고 걸을 때마다 나를 향한 현지인들의 시선에 무척 불쾌했다. 천박하고 음란한 말을 끊임없이 들었다. 한번은 낙타에 탄 10세쯤 되는 남자아이가 나를 쫓아와서 외설적인 표현을 외쳤다. 이집트 체류 기간 내내 내 곁에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비키니나 짧은 옷은 입지 않고 긴 치마만 입었는데도 그런 일을 당했다. 다시는 이집트에 가지 않을 거다.”

“이집트에 있는 동안 어딜 가든 사람들이 쳐다봐서 너무 불편했다. 남편도 있었고 섭씨 40도의 더위에도 긴 옷을 입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속담처럼 이슬람 국가에서는 옷차림에 유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남학생들의 행동을 용납하는 건 아니지만 피해 여성은 그런 옷차림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사회 규범과 문화를 따라야만 한다.”

“남학생들의 행동은 잘못됐지만 이집트 문화에 비추어 봤을 때 피해 여성이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한편 유엔여성기구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 여성 99.3%가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 여성들은 히잡을 쓰고 있었는지 혹은 서양식 복장을 하고 있었는지에 관계없이 성추행을 당했다.

최근 몇 년간 외신 여성 언론인들이 취재 중에 성폭력을 당한 장소로 악명 높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지난해 여성 시위자를 대상으로 한 계획적인 성폭력 사건도 잇따라 발생했다. 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해 설립된 ‘반(反)성희롱·성폭력 작전(OpAntiSH)’에 접수된 집단 성추행 신고만 19건에 이른다. 그중 한 피해자는 칼에 외음부를 베였다.

김수경 동아닷컴 기자 cvg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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