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지머먼 논란’ 다시 불붙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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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소년 살해혐의 무죄평결… 인종차별이냐 정당방위냐
배심원 6명중 흑인 1명도 없어… 경찰, 소요사태 우려 “시위 자제를”

미국에서 범죄자로 의심해 추격한 10대 흑인 소년과 몸싸움을 벌이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히스패닉계 미국인 조지 지머먼(29)이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나 또다시 인종차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3일(현지 시간) 플로리다 주 순회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 6명은 17시간에 가까운 심리 끝에 2급 살인혐의로 기소된 지역 자경단원 지머먼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법원도 이런 평결을 확인하는 판결을 전하며 지머먼의 석방을 선언했다.

평결이 내려진 순간에도 무표정했던 지머먼은 재판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엷은 미소를 지었다. 흑인의 위협에 대비해 방탄조끼를 입고 재판에 나왔던 지머먼은 곧바로 법정을 떠났다.

판결 직후 법정 밖에 모여 있던 흑인 100여 명은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강력 반발했다. 이날 오후 11시경 판결이 나온 탓에 큰 시위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경찰당국은 앞으로 이 사건이 대규모 소요 사태로 번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법정 주변을 둘러싸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경찰은 “아무도 폭력을 원치 않는다”며 시위 자제를 당부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는 ‘지머먼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메시지가 나돌고 있다.

특히 전원 여성으로 이뤄진 배심원단 6명 중 5명은 백인, 1명은 히스패닉이어서 인종차별 논란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배심원들은 평결 직후 단 한명도 공개 기자회견에 나서지 않았다.

이날 하루 종일 법률전문가들을 불러 평결 상황을 시시각각 전한 CNN 등 미 언론은 무죄가 선고되자 긴급 속보로 보도했다. 주요 신문들도 모두 1면에 대서특필하며 이번 사태가 인종관계에 몰고 올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사건의 파문은 음료수와 캔디를 사들고 귀가하던 17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이 지난해 2월 플로리다 주 샌퍼드 주택가에서 지머먼이 쏜 총알이 심장을 관통해 숨지면서 일어났다.

당시 경찰은 정당방위 차원에서 마틴을 살해했다는 지머먼의 진술만 듣고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플로리다 주 법에 근거해 곧바로 그를 석방했다.

그러나 ‘지머먼이 범죄전력이 없는 마틴을 근거 없이 범죄자로 의심해 추격했고 무장하지 않은 그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는 흑인들의 반발 시위가 뉴욕 등으로 확산되자 경찰은 재조사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해 4월 지머먼을 2급 살인협의로 기소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내가 아들이 있었다면 트레이번 같았을 것”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사건 당시 마틴이 입었던 검은 후드티와 손에 들었던 캔디는 무고하게 살해된 10대 흑인 소년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지난달 시작된 재판에서 플로리다 최고 변호사들로 꾸려진 지머먼 변호인단은 마틴이 지머먼을 쓰러뜨리고 공격을 가해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지머먼이 격투 과정에서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은 사진이 공개되고 지머먼이 오히려 방어 상태였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오면서 재판은 지머먼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 검찰은 지머먼이 경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틴을 쫓아간 점을 집중 부각했으나 유죄를 입증하는 데는 실패했다.

판결 때 법원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마틴의 가족은 트위터를 통해 “판결에 실망했지만 평화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흑인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미국 재판 시스템이 다시 한번 정의 실현에 실패했지만 또 다른 비극을 부르는 폭력은 피해야 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미국 최대 흑인인권단체 NAACP는 “이번 판결에 격분했다”며 법무부가 직접 민권 침해 혐의로 지머먼을 조사해 기소할 것을 요청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흑인 소년#조지 지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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