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어나!… 눈폭풍속 나를 살렸잖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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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홋카이도 53세 오카다 씨… 탈진상태서도 점퍼 벗어
스키복입은 딸 덮고 껴안아… 다음날 끝내 숨진채 발견

2일 오후 3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유베쓰(湧別) 정에 사는 오카다 미키오(岡田幹男·53) 씨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 일어섰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 나쓰네(夏音·9) 양은 집에서 약 5km 떨어진 아동센터에 있었다.

현관문을 여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눈의 나라’ 홋카이도에 이 정도 폭설은 흔하디흔하다. 조용히 얌전하게 내리는 걸로 봐서 차로 20분이면 충분히 딸을 데리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트럭을 몰고 아동센터에 도착했다.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날씨가 급변해 강한 바람이 불더니 눈발이 옆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폭풍설이었다. 금세 도로에 눈이 쌓이면서 차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오카다 씨는 차를 세웠다. 집까지 거리는 약 2.4km. 폭풍설 속에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는 약 700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친척 무라카와 가쓰히코(村川勝彦·67) 씨에게 휴대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도와주세요. 눈 때문에 차가 안 움직여요.” 오후 4시경이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친척은 오지 않았다. 차 기름도 간당간당했다. 기름이 떨어져 엔진이 꺼지면 자칫 얼어 죽을 수도 있다. 어디로든 빨리 대피해야 했다.

오후 4시 반경 그는 다시 무라카와 씨에게 전화를 했다. 무라카와 씨는 구조에 나섰지만 폭풍우 때문에 얼마 가지 못하고 돌아온 뒤였다. “연료가 없어요. 여기서 200m 떨어진 곳에 친구 집이 있으니 그리로 피난할 게요.” 무라카와 씨는 제대로 겨울 장비를 갖췄는지 물었다. 오카다 씨는 “딸은 스키복을 입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정작 자신은 얇은 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트럭에서 나왔다. 1시간 반 사이 온 세상은 이미 하얗게 변해 있었다. 도로인지 밭인지 구별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금세 눈이 쌓였다. 방향감각도 찾기 어려웠다. 눈보라가 계속됐다. 타고 온 차량의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맞바람을 받으며 걸어야 하는 데다 발이 눈 속에 빠져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200m만 걸으면 됐다. 힘을 냈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건물을 발견했다. 하지만 친구 집이 아니라 창고였다. 자물쇠가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눈보라를 피해 창고 옆에 앉았다.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딸에게 덮어주었다. 그리고 딸을 꼭 껴안았다.

무라카와 씨는 안절부절못했다. “무사히 피난했다”는 오카다 씨의 연락이 없었기 때문. 게다가 오카다 씨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다. ‘사고가 났다’고 직감했다. 소방서에 연락했지만 이미 모든 대원이 구조작업을 하러 출동한 상태였다. 무라카와 씨는 여러 지인에게 연락하고 직접 찾으러 나섰지만 어두워진 데다 워낙 눈보라가 심해 멀리 나갈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오전 7시 소방관들이 오카다 씨를 발견했다. 창고에 기대 옆으로 누운 상태로 딸을 여전히 껴안고 있었다. 숨은 멎었다. 하지만 딸은 살아 있었다. 소방관을 보자 “발이 아프다”며 울었다.

창고는 오카다 씨의 트럭에서 약 300m 떨어져 있었다. 옆으로 70m 지점에 낙농가가 있었지만 오카다 씨는 눈보라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다.

무라카와 씨는 병원에서 오카다 씨를 볼 수 있었다. 오카다 씨의 양손은 딸을 감싸 안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나쓰네 양의 건강은 이상 없었다. 나쓰네 양은 “필사적으로 트럭에서 내렸다. 그 후에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카다 씨는 재작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가리비와 굴 양식을 하면서 딸과 둘이서 생활했다. 동네 주민들은 “정말 사이가 좋은 부녀였다. 70m만 더 힘을 냈으면 따뜻한 집을 찾을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2, 3일 홋카이도엔 무려 2m까지 눈이 내렸다. 오카다 씨를 포함해 9명이 폭설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훗카이도#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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