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5개 주(州)의 1300개 제조업체, 13만3000여 명의 근로자, 9개국이 넘는 공동투자.’ 미 최대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과 미 정부가 국방산업의 신기원을 열기 위해 2005년부터 준비해온 차세대 전투기 ‘F-35 프로젝트’의 명세서다.
21일 블룸버그통신은 이 프로젝트가 계속된 개발 지연과 비용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고 록히드마틴이나 미 행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캐나다 영국 호주 등 9개 국가가 투자했고 무엇보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희망을 품게 했던 만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했다고 통신은 평가했다.
지난달 록히드마틴은 뉴욕 특파원들을 맨해튼에 설치한 시뮬레이션 센터에 초대해 직접 F-35모형을 시연해 보도록 했다. 당시 록히트마틴 관계자는 기자에게 “F-35의 성능을 한국 언론에 널리 알려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조바심을 드러냈다. F-35는 한국 창군 이래 단일 무기 도입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한국 정치권에서도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전투기를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1년 10월 1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입하기로 구두 약속했다”며 논란이 일었다.
이 프로젝트는 미 해군과 해병대 공군이 공동 사용할 수 있는 차세대 전투기를 만들어 항공 분야의 혁신을 가져오겠다는 의도로 시작됐다. 하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났다. 2010년 동체 균열 문제로 성능 시험이 중단된 데 이어 지난해 12월 해병대 모델 F-35B의 동체 밑면 칸막이벽에서 또다시 균열이 발견됐다. 설상가상으로 필수 소프트웨어마저 이상이 발견되면서 개발은 7년이나 지연됐다. 그 사이 개발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초 2300억 달러(약 250조 원)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보다 70%나 많은 4000억 달러(약 434조 원)로 추산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럼에도 사업이 중단되지 않고 이어지는 데는 미국 정부의 복잡한 속내가 숨어 있다. 미국 국방정보센터의 윈슬로 윌러 연구원은 “정치적 보호를 매우 많이 받는 사업이다. ‘더이상 감당할 수 없어 이 프로젝트를 폐기해야 한다’고 과감히 말할 수 있는 의원들이 몇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F-35 개발프로그램을 ‘터무니없는 비극’이라고 공개 비판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애리조나)조차 “수년간 차질이 있었지만 이제는 제대로 진행될 것으로 믿는다”며 비판 수위를 조절할 정도로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다.
워싱턴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배리 블레이크먼은 “기술적 문제를 고려할 때 이제 이 프로젝트를 폐기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투기 구매를 약속한 우방국들도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이탈리아가 구매 대수를 131대에서 90대로 줄이겠다고 한 데 이어 캐나다와 덴마크도 구매계획 규모를 줄였다. 블룸버그통신은 F-35가 2019년이나 돼야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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