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여대생 끝내 사망… 인도 ‘분노의 촛불’ 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전국서 추모시위… 경찰, 가해자 6명 살인혐의 기소
소냐 간디 “수치스러운 관행 바로잡기 위해 싸우겠다”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불법으로 운영하는 ‘개인 버스’에 탔다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23세 여대생이 사건 발생 2주 만인 29일 숨졌다. 피해 여성은 함께 구타를 당한 남성과 내년 2월 결혼식을 올릴 예비신부로 결혼식 및 축하 피로연 준비까지 다 마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장기와 뇌를 심하게 다쳐 싱가포르 전문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해 29일 인도로 돌아와 화장됐다. 만모한 싱 총리와 소냐 간디 국민의회 대표는 이날 새벽 피해 여성의 시신이 도착한 뉴델리공항으로 나가 딸의 시신과 함께 돌아온 피해자 부모를 위로했다. 간디 대표는 국영방송에 출연해 “여성을 폭행 및 성폭행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남성 우월주의의 수치스러운 관행이 만연된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을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피해 여성은 16일 밤 남자친구와 함께 뉴델리 시내에서 개인이 불법으로 영업하는 버스에 탔다가 운전사 등 남성 6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범인들은 쇠막대로 여성의 장기를 훼손했으며 두 사람을 집단 구타한 뒤 나체로 길가에 버렸다. 경찰은 29일 가해자 6명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인도에서는 성폭행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의대생으로 알려진 이 여성의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피해 여성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뉴델리 뭄바이 콜카타 첸나이 등 전역에서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위가 열렸다. 정부는 사태 악화를 우려해 수천 명의 경찰을 배치해 뉴델리 주요 도로의 차량 진입을 막았으며 일부 지하철역을 폐쇄했다.

인도 정부는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억눌려 있던 인도 여성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에서 좀처럼 공론화되지 못했던 성폭행 명예살인 조혼 등의 여성 문제가 정치무대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여성 상대 범죄에 무관심했던 인도인들을 각성시키는 도화선이 돼 사건 발생 1주일 후부터 뉴델리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성폭행 사건 처리에 대한 총체적 부실을 지적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인도에서 지난해 발생한 폭력범죄 25만6400여 건 가운데 22만8650건이 성폭행을 비롯한 여성 대상 범죄였다. 상당수 여성 피해자가 신고를 꺼려 실제 범죄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재판에 가더라도 가해자가 처벌받는 사례가 드물다.

최근 인도 북부 펀자브 주에서는 10대 여성이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으며 가해자 한 명과 결혼까지 강요하자 피해 여성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채널A 영상] 성폭행에 이어 쇠막대로 공격 받아 내장 파열까지…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