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구카이라이 ‘사형 유예’… 사법부 위에 권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1일 03시 00분


2년 뒤 무기 감형 수순 밟을듯
지도층 비리 단죄 형식 취해… 보시라이 지지층 반발 무마

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重慶) 시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 씨에게 사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뉴욕타임스 더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서양 언론은 구 씨 선고 소식을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안후이(安徽) 성 허페이(合肥) 시 중급인민법원은 20일 선고 공판을 열고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 씨를 독살한 혐의로 기소된 구 씨에게 사형을 선고하되 형 집행을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보시라이 집안의 집사 격으로 공범인 장샤오쥔(張曉軍) 씨는 9년형을 선고받았다. 구 씨와 장 씨는 선고 직후 상소 포기 의사를 밝혔다.

사형 집행유예는 중국에만 있는 제도로 2년 내 추가로 법률 위반을 하지 않으면 무기징역 등으로 감형해 준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江靑)도 1981년 ‘반혁명’ 혐의로 사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2년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1991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미국의 인권단체 ‘두이화 재단(중미대화기금회)’은 종신형으로 감형된 뒤 7년이면 신병 치료 목적으로 가석방될 자격을 얻기 때문에 구 씨도 9년을 복역하면 가석방 기회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외신기자의 출입이 봉쇄된 채 열린 이날 공판에 구 씨는 흰색 셔츠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신질환이 있다는 점을 참작했다. 탕이간(唐義干) 법원 대변인은 “구 씨의 행동은 그가 갖고 있는 심리적 장애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구 씨는 9일 공판에서 헤이우드 씨가 돈 문제로 아들 보과과(薄瓜瓜)의 신변을 위협했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위협만 했을 뿐 실제 행동이 없었기 때문에 ‘모성 본능’에 의한 방어적 살인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검찰은 “구 씨가 항우울제와 수면제 등을 복용했지만 범행 결과에 대한 판단 능력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검사 결과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주중 영국대사관은 이날 선고 직후 성명을 통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날 판결로 올해 2월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 시 공안국장의 미국 망명 기도로 불거진 보시라이 사태는 제1막을 내렸다. 하지만 구 씨가 헤이우드 씨와 어떻게 경제적 갈등을 겪게 됐는지, 구 씨가 자백한 것으로 알려진 외화 밀반출 등 경제범죄 혐의는 왜 기소에서 제외됐는지, 보 전 서기가 살해에 가담했거나 사건 무마에 관여했는지 등은 미제로 남았다.

이 때문에 이번 재판은 중국 국민과 보 전 서기 지지자를 모두 감안한 정치적 판결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력 지도층의 추악한 비리를 그냥 넘길 수 없고, 그렇다고 아직까지 엄존하는 보 전 서기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극형을 내리기에는 권력교체를 앞둔 상황에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형식은 극형이지만 내용에서는 선처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는 설명이다. 중국에서 ‘고의 살인죄’는 대부분 사형으로 처리한다.

한편 이날 허페이 법원은 헤이우드 사망사건을 조사한 뒤 이를 덮으려 한 혐의로 궈웨이궈(郭衛國) 전 충칭 시 공안국 부국장, 왕펑페이(王鵬飛) 전 충칭 시 공안국 기술수사총대장 등 공안 간부 4명에 대해 징역 5∼11년을 선고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구카이라이#사형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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