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도 힘든데… 그리스 ‘불법 이민과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7일 03시 00분


EU 가는 길목… 35만명 추산경찰, 주말 4900여명 체포

경제위기에 힘겹게 맞서고 있는 그리스가 ‘불법 이민과의 전쟁’이라는 또 다른 골칫거리로 부심하고 있다.

그리스 경찰은 4, 5일 수도 아테네 등에서 불법 이민자 4900여 명을 붙잡아 이 중 1130명을 구금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틀간 불법 이민자 검거에 동원된 인력만 아테네에서 2000명, 그리스 동부 국경에서 2500명이다. 검거 작전명은 ‘제우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왕이었던 제우스는 여행자와 손님을 보호하는 신이기도 했다.

크리스토스 마누라스 경찰 대변인은 “불법 이민자 척결은 부채와 싸우는 그리스의 국가적 생존에 필요하다”며 “그리스가 불법 이민자에게까지 일자리를 제공하며 환대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니코스 덴디아스 공공질서 장관은 “밀입국자의 피부색 민족 종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유일한 판단 기준은 인권과 유럽의 질서를 위해 법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EU로 향하는 불법 이민자 중 80% 이상이 그리스를 통하고 있다. 아테네 시내 곳곳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불법 이민자나 난민을 연상케 하는 차림의 아시아 동유럽 북아프리카 사람을 만나는 건 아주 흔한 일이 됐다. 그리스에는 80만 명에 이르는 합법적인 이민자와 함께 불법 이민자도 35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난으로 심해진 불법 이민자에 대한 그리스 국민들의 반감은 6월 총선에서 이민 금지와 국경에 지뢰 설치 등의 공약을 내세운 극우 정당 황금새벽당이 18석이나 차지하며 처음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한 데서 잘 드러났다.

그리스는 최근 중동의 화약고가 된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의 유입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터키가 5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것도 그리스의 또 다른 걱정거리다.

아직은 시리아 난민이 그리스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하지만 경제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그리스 정부는 시리아 사태까지 이중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스는 최근 터키 접경 지역의 국경수비대에 병력 1800명을 추가로 배치해 총 병력 규모를 4배로 늘렸다. 그리스와 터키를 가로지르는 에브로스 강에는 물에 뜨는 방책도 설치했다.

시아 아나그노스토 플루 아테네 판테온대 교수는 “아랍의 봄과 남유럽 재정 위기 때문에 급증하는 불법 이민과 난민 문제는 유럽 통합과 EU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는 유럽 전체 차원에서 인도적 문제로 접근하고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그리스#불법 이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