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죽인 범인은 야생개 딩고” 호주 엄마 ‘32년 누명’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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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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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생후 2개월 딸 살해” 종신형
6년 뒤 딩고 굴서 실종 아기옷 발견
검시관 ‘사고死’ 확인… 무죄 확정


실종 직전인 1980년 당시 32세이던 엄마 린디 체임벌린과 생후 2개월 된 딸 아자리아. 사진 출처 시드니모닝헤럴드
실종 직전인 1980년 당시 32세이던 엄마 린디 체임벌린과 생후 2개월 된 딸 아자리아. 사진 출처 시드니모닝헤럴드
체임벌린 가족의 비극은 1980년 여름 호주 대륙 중앙에 있는 울루루 국립공원으로 캠핑을 떠난 날 시작됐다. 텐트에 잠들어 있던 생후 두 달 된 딸 아자리아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 실종된 아기를 두고 ‘호주산 야생 들개 딩고가 물고 갔다’는 부모의 증언과 ‘부모에 의한 살인’이라는 검찰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법정 다툼은 무려 32년간 이어졌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영화 같은 사건의 결론이 12일 마침내 내려졌다. 범인은 딩고였다.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 등에 따르면 12일 노던테리토리 주 다윈치안법원에서 열린 최종공판에서 엘리자베스 모리스 검시관은 “모든 증거와 정황상 아자리아는 딩고에게 물려가 사망한 것이 맞다. 부모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딸을 잃은 슬픔과 살인범으로 몰린 억울함으로 32년간 고통 받은 부모가 승리의 눈물을 흘린 순간이었다. 호주 역사상 가장 긴 법정 투쟁이 막을 내린 순간이기도 했다.

사건은 1980년 8월 17일 사막 한가운데 있는 바위산 울루루에서 캠핑 중이던 마이클 체임벌린(당시 36세)과 린디(32세) 씨 부부가 텐트 안에 눕혀 둔 딸을 딩고가 물어갔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피만 묻었을 뿐 멀쩡한 상태의 아기 옷이 텐트 근처에서 발견되면서 부부에게 오히려 살해 의혹이 쏟아졌고 두 사람은 유력한 용의자로 몰려 이듬해 재판정에 섰다. “딩고는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딩고가 옷을 찢지도 않고 아기만 빼갈 수 없다”는 전문가 증언이 뒷받침됐다. 호주 언론도 부부에게 온갖 의혹을 제기하며 마녀사냥식 기사를 쏟아냈다. 이 재판은 호주 최초로 생중계된 재판이었다.

1차 재판에서 부부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1년 뒤 검찰 측이 부부의 차에서 발견된 아자리아의 혈흔과 가위를 증거로 내세우며 분위기가 뒤집어졌다. 가위로 아기 목을 찔러 죽인 뒤 가방에 담아 버렸다는 게 검찰 주장이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1982년 2차 공판에서 배심원단은 일제히 린디 씨에게 살인혐의로 종신형을, 마이클 씨에게 살인방조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1986년 울루루 깊은 골짜기의 딩고가 사는 굴에서 땅에 반쯤 파묻힌 아자리아의 재킷이 발견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노던테리토리 주정부는 4년째 옥살이 중이던 린디 씨를 석방했고 이 사건을 특별 검토한 왕립위원회는 유죄 판결을 폐기했다.

1995년 열린 3차 공판에서 ‘사인 불명 판결’이 내려진 이후 부부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속속 나왔다. 2001, 2003년 10세 미만 아이들이 잇따라 딩고에게 물려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도 무죄에 힘을 보탰다. 딩고가 봉지를 찢지 않고도 봉지 안 고기를 꺼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법정 실험 결과도 나왔다. 결국 12일 마지막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린디 씨는 “32년간의 고통스러운 재판이 끝나 다행”이라며 눈물지었다. 마이클 씨는 “끔찍한 싸움이었다. 죽은 딸의 영혼이 이제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1998년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어둠 속의 외침’)로 만들어져 편견에 사로잡힌 사회와 황색저널리즘에 대한 비판, 배심원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체임벌린#아자리아#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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