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용사의 넋이여 조국의 감사를 받으소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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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세이보 상병, 동료 구하고 전사한 지 42년 만에 훈장

“브라보중대 여러분, 자리에서 일어나 조국의 감사를 받으십시오. (죽은) 세이보 상병이 간절하게 원했던 것입니다.”

좌중에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수는 3분이나 이어졌다. 42년 전 베트남전이 끝나고 돌아와 이제는 백발이 된 미 101공수부대 소속 브라보중대 노병 20여 명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16일 오후 3시 25분(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베트남전 전쟁영웅인 레슬리 세이보 상병(당시 22세)에게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의 훈장’을 추서했다. 정작 주인공은 자리에 없었다. 부인인 로즈메리 세이보 브라운 씨가 대신 받았다. 고교 시절 만나 1968년 결혼한 두 사람은 신혼 1개월 만에 세이보 상병이 베트남전에 징집되면서 다시 만나지 못했다. 흐느끼는 부인을 오바마 대통령이 오른팔로 꼭 감싸고 뺨에 키스하면서 위로했다. 나이를 뛰어넘어 마치 따뜻한 아버지 품에 안긴 딸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미 101공수부대 506보병대 3대대 브라보중대 소속이었던 세이보 상병은 1970년 5월 10일 베트남 국경에 인접한 캄보디아 시산 지역 정글에서 적군인 북베트남군의 기습 매복공격을 받자 동료를 구한 뒤 적의 벙커까지 기어 올라가 수류탄을 던지며 싸우다 전사했다. 당시 부인과 가족들은 세이보 상병의 마지막 전사 순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군사령관이 그의 살신성인 행동을 보고받자마자 명예훈장 추천자로 올렸지만 전쟁 와중이라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서류가 분실됐기 때문. 그렇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영원히 묻힐 뻔했던 세이보 상병의 영웅적인 행동은 같은 부대 소속 전우였던 앨턴 맵 씨가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세이보 상병의 공적 서류를 우연히 찾으면서 빛을 보게 됐다. 맵 씨는 의회와 육군, 백악관에 이 사실을 알리며 훈장 수여 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난관에 부딪혔다. 당시 미국 법에 무공 후 3년 이내에 추천이 이뤄져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맵 씨를 비롯한 전우들은 의원들을 설득했고 의회는 결국 2008년 추천 기간 제한을 없애도록 법을 고쳤다.

이날 300여 명의 참석자가 빼곡하게 자리를 메운 이스트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맵 씨가 세이보 상병의 공적자료를 찾은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그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다시 좌중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이보 상병의 스토리는 역사에서 잊혀질 뻔했다. 하지만 한 전우의 노력으로 42년이 지난 후에야 기록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전 50주년을 맞는 올해, 그동안 참전용사들이 존경받지 못한 현실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이런 실수가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셸 오바마 여사와 함께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과 레이먼드 오디어노 육군참모총장, 제임스 에이머스 해병대 총사령관 등 육해공군 및 해병대 수뇌부가 모두 참석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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