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정치개혁 실패땐 제2의 文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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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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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인대 폐막… 마지막 회견서 당내 극좌파에 직격탄

원자바오(溫家寶·사진) 중국 총리는 14일 ‘왕리쥔(王立軍) 사건’과 관련해 “보시라이(薄熙來) 충칭 시 당 서기와 시 정부가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조사 결과를 인민에게 알리겠다”고 해 문제를 그냥 덮고 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원 총리는 이날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왕리쥔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당 중앙은 이 사건을 고도로 중시해 즉시 유관 부문이 조사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현재 조사에 진전이 있다”며 “사실과 법률에 따라 엄정히 처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보 서기의 오른팔 왕리쥔 전 충칭 시 공안국장은 지난달 미국 망명을 시도하다 실패했으며 이 과정에서 보 서기의 정치 행보를 비난해 논란이 일었다. 중국 정부는 왕리쥔 사건을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는 분위기여서 보 서기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원 총리가 공개 비판함에 따라 재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원 총리가 “우리는 (1978년 열린) 당 11기 3중 전회에서 사상해방과 실사구시를 당의 기본 노선으로 삼아왔고 개혁개방에 중국의 명운을 거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고 강조한 대목은 ‘홍색가요(공산당 노래) 부르기’ 등 좌경화 경향을 보였던 보 서기에 대해 사상적 비판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 총리는 정치개혁도 강하게 촉구했다. 그는 “정치체제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문화대혁명 같은 역사적 비극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며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4인방 분쇄 이후 비록 일부 문제를 해결하고 개혁개방을 실행했지만 문혁의 영향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성장에 따라 분배와 신뢰 결핍, 부패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제 개혁뿐 아니라 정치체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당과 국가의 통치 시스템에서 개혁이 필요하다”며 “책임 있는 당원과 간부들은 긴박감을 느껴야 한다”고 최고지도부에 칼끝을 겨눴다.

그동안 원 총리는 당의 지배 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만연한 부패 사슬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도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삼가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문혁의 잔재’ 발언은 당 내 극좌 세력에 직격탄을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원 총리의 정치개혁 주장을 당 수뇌부가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날 발언 역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원 총리가 중국 역사상 최악의 정변으로 꼽히는 문화대혁명까지 거론하며 개혁을 촉구해 올가을 지도부 개편을 앞둔 중국 정가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원 총리는 또 ‘아랍의 봄’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아랍 인민들의 민주적 요구는 존중받아야 한다”며 “이런 민주적 추세는 어떤 힘에 의해서도 저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민주화 지지 발언을 했다. 지난 9년간 공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처리 못한 일이 많고 회한이 남는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원 총리가 10년 임기 동안 마지막으로 주관한 언론과의 공식 대화인 이날 회견은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 회견은 2003년 원 총리가 처음 전국인대 폐막식 기자회견을 주재한 이후 가장 길었다.

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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