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총선 현장을 가다]‘강경’ 하메네이 세력 압승… 이란 核긴장 수위 높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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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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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이란 제재가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 주었다.”

4일(현지 시간) 이란 일간지 ‘이란 뉴스’는 2일 치러진 총선 초반 집계에서 종교 지도자이자 보수 강경파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들이 대거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4일 테헤란 시내는 막 큰 선거를 끝낸 수도라기에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아직 선거 결과가 미칠 파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우리의 ‘테헤란로’처럼 서울을 붙인 ‘서울공원’에서 만난 알리 씨(20·대학생)는 “하고 싶어서 투표를 한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취업할 때 불이익이 있을까 봐 했다. 대부분의 대학생은 누가 되느냐에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과일노점을 운영하는 이스마일리 씨(52)는 “투표율이 64.5%라고 하지만 믿기 힘들다”고 했다. 당국이 부정투표를 자행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주민들은 “테헤란 내 카라치 구역의 한 후보가 못사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안 한 사람의 신분증을 빌려주면 1인당 20만∼50만 리알(4만5350원)씩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3444명이 출마해 290명을 뽑는 이번 총선의 초기 개표 결과 4일까지 당선이 확정된 197명 중 102명이 친(親)하메네이, 반(反)아마디네자드 인사다. 테헤란에서 동남쪽으로 60km 떨어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고향 가름사르에서 출마한 그의 여동생 파르빈도 낙선했다고 반관영 메흐르통신이 전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빈민촌 가름사르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직후 가족과 함께 테헤란으로 이주했다.

이란 내무부는 잠정 집계 결과 이번 총선 투표율이 64.2%로 2009년의 51.0%보다 크게 높아졌으며 하메네이 지지 정당과 후보의 득표율은 7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서방에 대해 강경 노선을 펴온 하메네이 세력이 승리를 거두면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큰 타격을 받는 등 내부 정국 변화는 물론이고 서방과의 ‘핵개발 제재 국면’에도 긴장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신정 정치’로 정치에 대해 종교가 우위인 이란에서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 종교 지도자인 하메네이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두 사람 간의 대결 양상으로 바뀐 것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하메네이의 일부 각료 인사나 강경 핵정책에 반대하며 지난해 중반 이후 ‘도전’하는 모양새를 띠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AP통신은 이번 선거가 하메네이에게 비판적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국민투표의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총선 투표 마감(오후 5시)을 네 차례나 연장해 오후 11시까지 늘려가며 투표를 독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테헤란의 정치분석가 다부드 헤르미다스바반드 씨는 “이번 총선은 이란 정치에서 아마디네자드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8일 의회에 출석해 경제운용 실패에 대해 추궁당한다.

AP통신은 “반아마디네자드 세력이 새 의회를 장악해 이란 핵정책은 더욱 대담하게 나갈 수 있게 됐다. 내년 대선에서도 친하메네이 인물들이 당선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하메네이 등 강경 보수파가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등 서방에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소지가 많아진 것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란의 총선 결과는 ‘치명적 선택’이 될 수 있다”며 대결 격화를 우려했다.

하메네이는 2일 “미국과 동맹국은 이란의 핵개발 야망이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감한 시기’로 넘어가고 있다”며 서방과의 대립을 강조하며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번 총선은 부정선거 의혹이 일었던 2009년 대통령선거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후 첫 전국 규모 선거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일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한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반대에도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 무력공격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어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뉴욕타임스는 3일 미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이스라엘계 인사들이 오바마 행정부에 이란 핵문제에 대해 강경 대응하라는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테헤란=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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