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4만달러 日서 일가족 굶어 죽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3일 03시 00분


수도권 60대 부부-30대 아들 사망 2개월이나 지나 발견돼급증하는 빈곤층 대책 구멍… ‘복지강국’ 자부 일본열도 충격

일본 수도권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부부와 30대 아들이 오랜 굶주림 끝에 숨진 채 발견돼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가족이 숨진 것은 2개월이나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오르내리는 일본에서 정부로부터 생활보호를 받지 못하고 ‘고립사(孤立死)’하는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22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20일 사이타마(埼玉) 시 기타(北) 구의 아파트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안방과 작은방에서 각각 발견된 60대 부부와 30대 아들의 시신은 앙상하게 야윈 상태였다. 시신 옆에는 바싹 마른 고양이의 사체도 있었다.

집 안에는 먹을거리가 전혀 없었고 방 한편에는 물이 담긴 페트병이 놓여 있어 물로 끼니를 대신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집 안에서 발견된 돈은 1엔(약 10원)짜리 동전 몇 개가 전부였으며 전기와 가스는 이미 끊긴 상태였다. 사이타마 경찰은 이 가족이 굶주려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의뢰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생활 궁핍으로 가족이 굶어 죽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삿포로(札幌) 시에서는 40대 자매가, 지난해 1월에는 오사카(大阪)에서 60대 자매가 각각 오랫동안 먹지 못해 숨진 채 발견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식료품 부족으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30∼90명에 이른다.

생활보호자에게 비교적 넉넉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일본에서 이처럼 아사(餓死)자가 잇따르자 빈곤층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 여파로 생계 곤란자의 계층과 성격이 다양해지면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생활 곤궁자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 일본 내 복지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고령자나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로 여겨져 왔지만 현재의 일본은 오랜 불황으로 젊은 사람조차 취직을 못해 생활 곤궁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실제 20일 발견된 사이타마 시의 일가족은 생활보호 대상도 아니었고 장애인 가족도 없었다. 30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생활보호관찰 대상에서 제외됐다. 일본 정부는 2010년부터 생활 곤란으로 전기나 가스 요금을 내지 못하는 가구가 생기면 사업자가 전기나 가스를 끊기 전에 지자체와 협의해 생활보호를 받도록 권유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 가족은 이런 복지서비스도 받지 못했다.

최근 일본 내에서 생활보호 수급자가 급증하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심해지는 것도 생활보호 신청을 꺼리게 만드는 원인이다. 생활보호 수급자를 한심한 사람으로 취급해버리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정작 생활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은 보호 신청을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해 정부 보조금을 받아야 하는 극빈계층 수는 지난해 7월 현재 205만 명(월평균)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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