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중국 서남부 쓰촨(四川) 성 신청(新城)에서 대학을 졸업한 라이샤오둥 씨(당시 21세). 칭다오(靑島)에 있는 세계적인 전자기기 조립업체인 폭스콘에 입사가 결정된 그는 졸업장이 구겨지지 않도록 옷으로 꽁꽁 동여매 여장을 꾸리면서 잔뜩 꿈에 부풀어 있었다. 열심히 일해 간호사인 여자친구와 가정을 꾸미는 상상에 저절로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는 불과 6개월 뒤인 지난해 5월 한 줌의 재로 바뀌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애플의 아이패드를 생산하던 이 공장에서 불이 나 4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중화상을 입은 사고에 희생된 것이다.
애플은 지난해 4분기 130억 달러(약 14조7000억 원)의 사상 최고의 실적을 냈으며 시장은 벌써부터 아이폰5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26일 애플이 구축한 이 같은 ‘아이 이코노미(iEconomy)’ 뒤에는 중국 노동자의 끔찍한 노동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비자들이 매일 쓰고 있는 아이폰의 부속 하나 하나에 그들의 눈물과 고통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 작업 환경 개선에 귀 닫은 애플
라이 씨가 희생된 화재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폭스콘 아이패드 제조공장은 초비상상황이었다. 애플이 출시시기를 몇 주 앞당기면서 하루 수천 개의 아이패드 케이스를 세척해야 하는 ‘지상 명령’이 떨어졌다. 3교대로 24시간 공장 가동이 이뤄졌다. 작업 내내 서 있어야 하는 근로자들은 다리가 퉁퉁 부어 비틀거리기도 했다. 문제는 세척 과정에서 발생하는 알루미늄 먼지였다. 환기시스템 용량을 넘어선 알루미늄 먼지에 폭발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사고가 나기 2주 전 홍콩의 시민단체인 ‘기업의 잘못된 행동을 막는 학생과 연구원들’은 이 공장의 알루미늄 먼지를 포함한 위험한 작업환경을 고발한 보고서를 폭스콘과 애플에 보냈다. 환기시스템 용량을 늘리고 근로자의 안전장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단체의 데비찬쓰완 씨는 “애플은 아무 응답이 없었다. 수개월 뒤에 직접 애플 본사를 찾아갔지만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려 하지 않았다. 당시 화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공장에선 7개월 뒤인 2011년 12월에도 똑같은 원인으로 폭발 사고가 나 59명이 다쳤다.
○ 시늉만 하는 애플
애플은 전자업체로서는 선도적으로 2005년에 납품 공장들의 근무여건과 안전수칙을 담은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동근로자의 취업 금지, 유독성 화학물질 사용 금지 등의 강령을 정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96개 해외 부품 공장에 대해 감사를 벌여 매년 관련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NYT가 공장 근로자를 인터뷰하고 시민단체 자료, 애플의 공식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취재한 결과 실제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은 최근 보고서에서 60시간 근로는 전체의 38%만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폭스콘은 방 3개가 있는 아파트에서 20명의 근로자가 지내도록 했으며 희생된 라이 씨만 해도 주 6일을 근무했다.
중국 선전에 있는 또 다른 아이폰 제조공장인 윈텍사에서는 최근 2년 동안 18명의 근로자가 자살을 시도해 회사 측이 자살 방지 그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에는 유독화학물질로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다며 근로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한 근로자는 “회사 측이 아이폰 스크린을 세척하는 능력이 세 배나 높은 유독화학물질을 쓰게 했다”고 폭로했다.
애플 해외 제조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애플이 납품업체에 저가의 비용과 빠른 제조공정을 요구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여기에 맞추지 못하는 제조업체는 ‘애플 로또’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윈텍이 이 화학물질 사용을 중단한 지 6개월 만에 애플은 윈텍에 지불하는 대금을 크게 삭감했다.
애플 전직 임원은 “똑같은 문제가 매년 지적되는 것은 애플이 이를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공장의 근로환경과 애플의 이익 및 공정납기가 충돌할 때 애플은 언제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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