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폭로 ‘주중 美대사관 외교전문’ 2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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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분 오시니 수염 깎지 말고 누추하게…”
후진타오 설날 민심탐방 대비… 당관리들, 농부에 ‘이미지 연출’

2007년 춘제 기간 중국 간쑤 성을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오른쪽)이 모범 농민으로 뽑힌 리카이 씨와 대화하는 모습. 당시 당 
관리들은 후 주석의 친서민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리 씨에게 수염을 깎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출처 BBC
2007년 춘제 기간 중국 간쑤 성을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오른쪽)이 모범 농민으로 뽑힌 리카이 씨와 대화하는 모습. 당시 당 관리들은 후 주석의 친서민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리 씨에게 수염을 깎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출처 BBC
“높은 분 오시니 면도하지 말 것. 최대한 허름하고 누추해 보이도록….”

2007년 2월 중국 간쑤 성 딩시 시 다핑의 농부 리카이 씨(70)는 성 관리로부터 특명을 받았다. 쉬징 간쑤 성 당 서기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고위층’의 방문이라고만 들었지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오는 것으로 확신했다.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날)까지는 열흘이 남았지만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최고지도자들이 소외 지역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주중 미국 대사관의 외교 전문에는 당시 중국 관리들이 후 주석의 ‘친서민 지도자’ 이미지를 심기 위해 어떤 연출을 했는지를 엿보게 해주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후 주석 방문 3일 전부터 딩시에 내려와 대기 중인 당 관리들은 농부 리 씨를 후 주석이 만날 대상으로 정한 뒤 수염을 깎지 말도록 했다. 빈곤 지역의 전형적인 농부를 만나는 이미지를 위해서는 수염이 덥수룩한 게 좋다는 판단에 따른 것. 또 후 주석이 방문하는 농촌 가정들에는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새로 들이지 말라고 지침을 내렸다. 빈곤지역 방문이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다.

이처럼 세밀히 준비했지만 돌발 사건도 생겼다. 쉬 당 서기는 후 주석 방문을 계기로 딩시 시의 감자를 홍보하기 위해 후 주석이 찐 감자를 먹는 일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후 주석이 찐 감자를 리 씨의 손녀에게 건네자 손녀는 “감자라면 물릴 대로 물렸다”며 거절했다. 13억 지도자는 잠시 당황했다. 난처한 가족들이 한 번만 먹어 달라며 간곡히 설득한 끝에 TV에는 두 사람이 감자를 나눠 먹는 훈훈한 모습이 방송됐다.

영국 BBC는 “후 주석의 민심 탐방의 이면에는 완벽한 연출을 위한 관리들의 수고가 존재했다”며 “중국 지도자들이 ‘각색된 이벤트’를 통해 여론을 파악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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