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검찰, 금융범죄 초강경 수사… 헤지펀드 내부자거래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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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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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도청까지 해가며 마피아 잡듯 4년 추적

미국 검찰이 마피아 수사 때나 이용했던 도청 기법을 최초로 동원해 미국 헤지펀드 사상 최대 규모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검찰이 초강경 수사로 월가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에 철퇴를 가하자 월가는 검찰의 후속 수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11일(현지 시간) 미 헤지펀드 갤리언그룹의 공동설립자인 라지 라자라트남에게 적용된 내부자거래 등 14가지 혐의를 모두 유죄라고 평결했다.

갤리언그룹은 2008년 70억 달러를 운용하면서 한때 세계 10대 헤지펀드로 급성장했다. 라자라트남은 펀드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골드만삭스, 무디스, 인텔, 구글 등 굵직한 미국 기업의 미공개 내부정보를 주식 투자에 활용해 2003년부터 2009년까지 6380만 달러(약 689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를 받고 있다.

뉴욕 남부지검의 프릿 바버라 검사팀은 2007년 라자라트남의 내부자거래 첩보를 정보원에게서 입수한 뒤 수사를 시작했다. 라자라트남은 신입사원 채용 인터뷰에서 ‘어떤 기업의 특별한 내부 정보를 가진 게 있느냐’고 물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기업 내부정보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검찰 수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다 2008년 법원의 도청 허가를 받으면서 급물살을 탔다. 수사팀은 2008년 초 이후 2400건의 통화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했다. 이 가운데 45건이 재판에 활용됐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2008년 9월 골드만삭스 이사회 멤버였던 라자트 굽타가 “워런 버핏이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라자라트남에게 알려주는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라자라트남은 이후 수억 달러어치의 골드만삭스 주식을 매입했다. 또 같은 해 10월에는 굽타에게서 “골드만삭스가 조만간 이익이 크게 줄었다는 사실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화를 받고 다음 날 골드만삭스 주식을 모두 팔았다. 이 전화 내용도 공개됐다. 검찰은 굽타를 기소하지 않았지만 금융감독 당국이 굽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배임혐의에 대한 별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라자라트남의 변호사 측은 “라자라트남의 활동은 월가에서 흘러 다니는 정보를 확인한 수준에 불과하며 월가의 일상적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감청기록에 등장하는 투자은행 간부 등이 유죄를 인정하고,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재판은 검찰 쪽에 유리하게 진행됐다. 증인으로 출석한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도 배심원들에게 “라자라트남이 입수한 정보는 극소수의 내부자만 알 수 있는 극비사항이었다”고 말했다.

라자라트남은 7월 29일로 예정된 선고 공판에서 최대 25년형의 징역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버라 검사는 이날 재판 후 “라자라트남은 미국에서도 교육을 잘 받고 훌륭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며 “너무 영리해서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리랑카에서 태어난 라자라트남은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소형 투자은행에서 근무하다 1996년 갤리언을 설립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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