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내일 다시 올게”… 가족잃은 초등3년생, 대피소 돌며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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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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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가족찾기

황태훈 기자
황태훈 기자
“내일 다시 올게, 도시히토(明日もくるからね, 壽仁).”

15일 일본 미야기(宮城) 현 이시노마키(石卷) 시 가도와키(門脇) 중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 노란 수건을 목에 두른 앳된 얼굴의 한 소년이 가족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돌아다녔다. 할머니들은 안쓰러운 듯 과자를 건넸지만 소년은 어른스럽게 사양했다.

가부(釜)초등학교 3학년 아이자와 도시히토(相澤壽仁·9)군은 이날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와 만나 “가도와키 중학교와 가도와키 고등학교를 번갈아 돌아다니며 가족을 찾고 있다. 오늘만 네 바퀴를 돌았지만 가족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아버지는 도시히토 군이 다니는 학교로 차를 몰고 달려와 도시히토를 태웠다. 부모님과 할머니, 사촌 2명이 차에 타고 있었다. 그러나 대피소가 마련된 가도와키 중학교로 가던 중 커다란 쓰나미가 차를 덮쳤다. 도시히토 군은 창문을 깨뜨려 옆에 있던 사촌의 손을 잡고 창 밖으로 탈출했다. 곧 나무 같은 게 흘러와 둘의 손을 떼어 놓았다. 도시히토 군의 이름을 부르는 사촌 형의 목소리와 “사람 살려”라고 외치는 할머니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도시히토 군도 정신을 잃었다.

30분쯤 지나 도시히토 군은 폐자재 위에서 눈을 떴다. 가족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그 후로 가족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지금은 동네 미용실 주인 기타하라 미쓰나리 씨(64)와 함께 산다. 미쓰나리 씨가 말했다. “걱정하지마, 금방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도시히토 군은 씩씩하게 답했다. “응, 걱정 안 해요. 물이 빠지면 집에 가서 찾아볼 거예요.”

‘가족애의 위대한 힘’을 보여 주는 생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15일 이와테(巖手) 현 오쓰치(大槌)의 한 주택에서 아베 사이(阿部才·75·여) 씨와 장남 아베 히로미 씨(54)가 지진 발생 92시간 만에 구조됐다. 지진이 일어난 11일 아들 히로미 씨는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1층에서 2층으로 옮기며 쓰나미에 휩쓸리는 것을 막았다. 잔해를 헤치고 집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그는 어머니를 혼자 끌어낼 수 없다고 판단해 일단 혼자 대피소에 갔다. 그때부터 히로미 씨는 대피소와 집을 오가며 어머니를 위해 물과 음식을 날랐다. 어머니는 13일 처음 배급받은 물 500mL를 단숨에 들이켰고 이튿날에는 아들이 가져온 빵 한 개와 물로 기운을 차렸다.

히로미 씨는 15일 뒤늦게 소식을 듣고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2층에 갇혀 있던 어머니를 구출해냈다. 구조 직후 사이 씨는 쓰나미가 몰려올 당시 “파도가 온다. 2층에 올라가라”고 소리치던 남편의 안부부터 물었다. 하지만 히로미 씨의 아버지는 지금껏 연락이 두절됐다. 사이 씨는 현재 저체온증을 겪고 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내일 11시에 다시 오겠다’고 쓴 종이를 들고 있는 아이자와 군. 아사히신문 제공
‘내일 11시에 다시 오겠다’고 쓴 종이를 들고 있는 아이자와 군. 아사히신문 제공
16일 일본 미야기(宮城) 현 나토리(名取) 시청에서는 사토 미쓰오(佐藤三男·69) 씨가 죽마고우 10명의 행방을 찾기 위해 로비에 붙어 있는 대피자 명단을 꼼꼼히 살폈다. 그는 혹시나 시청 민원실에 생존자 등록을 한 건 아닌지 자원봉사자에게 문의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지진 직후 친구들에게 수십 번씩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통화는 되지 않았다. “메모를 남기라”는 목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그는 “1월 모임에서 헤어지며 ‘고희(古稀·70세) 때는 함께 축하 파티를 열자’고 약속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마지막인 건 아니겠지”라던 그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번 더 친구들 이름을 찾아보겠다”며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미야기=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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