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다들 살아있었구나”… 가족 6명 96시간만에 ‘기적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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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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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테현 간노씨 가족 이야기

박형준 기자
박형준 기자
간노 게이코(管野惠子·58·여) 씨는 대지진이 일어난 11일 오후 평상시와 다름없이 이와테(巖手) 현 오후나토(大船渡) 시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갑자기 동료 직원 한 명이 “쓰나미다. 피해”라고 외쳤다. 그 순간 그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장 높은 5층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잠시 후 높이 10m 가까운 쓰나미가 보육원 주위의 목조 건물들을 박살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형 액화석유가스(LPG) 저장고까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공포의 몇 시간이 지난 뒤 쓰나미가 진정되자 인근 주택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남편 간노 유키오(管野幸男·58) 씨, 승용차로 20분 떨어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의 집에 혼자 있는 시어머니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올해 88세인 시어머니는 평상시 작은 지진에도 다리를 떨고 주저앉을 정도로 무서움을 많이 탔다. 아들 간노 고(管野幸·30) 씨와 며느리, 다섯 살짜리 손자도 잘 대피했는지 걱정이 됐다.

물이 빠진 후 그는 남편이 일하던 건설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남편은 없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정류장을 찾아갔지만 버스와 택시 모두 다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보육원으로 돌아온 그는 다음 날인 12일 구호활동에 나선 자위대 차량을 간신히 얻어 타고 집 근처에 마련된 시립 제1중학교 대피소로 갔다.

대피소에 등록하자마자 그는 제일 먼저 마이크를 들고 가족들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후 방송을 듣고 남편이 급하게 뛰어왔다. 남편은 다행히 쓰나미가 덮쳤을 때 3층 건물 골조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서 화를 면했다. 남편은 그에게 “골조가 흔들려 죽는 줄만 알았다”며 급박했던 순간을 말해줬다.

그러나 남편을 만난 기쁨은 잠시였다. 대피소 안을 샅샅이 뒤지고 게시판에 적힌 생존자 이름들을 모두 훑어봤지만 나머지 가족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희망을 조금씩 잃고 있던 그의 앞에 15일 오전 애타게 찾던 아들이 불쑥 나타났다. 다른 피난소로 대피했던 아들은 대피소 내 생존자 명단에서 어머니의 이름을 찾아내고 한달음에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아들은 며느리와 손자, 그리고 할머니(간노 씨의 시어머니)도 무사히 함께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고령의 시어머니도 쓰나미 직전 작은 지진이 수차례 왔을 때 손자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산으로 피난한 것이다.

15일 오후 일본 리쿠젠타카타 시의 한 대피소에 간노 게이코 씨의 가족이 모였다. 뒤쪽
왼쪽부터 남편, 간노 씨, 아들. 앉아 있는 사람은 간노 씨의 시어머니다. 간노 씨의 며느리와 손자는 다른 피난소에서 아직 오지 못했다.
15일 오후 일본 리쿠젠타카타 시의 한 대피소에 간노 게이코 씨의 가족이 모였다. 뒤쪽 왼쪽부터 남편, 간노 씨, 아들. 앉아 있는 사람은 간노 씨의 시어머니다. 간노 씨의 며느리와 손자는 다른 피난소에서 아직 오지 못했다.
모든 가족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순간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면서 그는 “기적입니다. 기적”이라는 말을 연방했다.

한동안 눈물을 흘리던 간노 씨는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와 아들 가족이 있는 인근 대피소로 갔다. “아, 다들 살아있었구나….” 96시간 만의 상봉…. 간노 씨 부부를 본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눈물부터 흘렸다. 그도 시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울었다.

그들이 살던 집은 쓰나미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간노 씨의 남편은 “가족이 모두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며 “가족이 힘을 합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가족들을 다독였다.

이와테=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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