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쓰나미도 꺾지 못한 ‘일본인의 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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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 현장취재 박형준 기자가 만난 3人

동일본(東日本) 대지진 현장 취재를 위해 일본 후쿠시마(福島) 공항에 도착한 게 12일. 그 후 사흘간 만난 사람 가운데 특히 잊혀지지 않는 3인이 있다.

일본에 도착해 처음 만난 인물은 에가와 히로시(江川洋·25) 씨.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臺) 시에서 일하는 택시 운전기사다. 12일 오후 3시경 센다이로 가기 위해 그의 택시를 타고 후쿠시마를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어 국도를 달렸다. 저녁때가 되자 슬슬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들렀지만 헛수고였다. 대부분 편의점은 문을 닫았고 문을 연 곳은 음식이 전혀 없었다. 센다이에 가까워질수록 편의점에는 아이스크림조차 다 팔린 상태였다.

문을 연 식당은 한 곳도 없었다.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지진 취재에서 물과 음식이 없다면 큰 문제다. 너무 준비 없이 일본에 온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근심 가득한 기자를 본 에가와 씨는 센다이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는 “밥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없어 미안하다. 그 대신 빵과 과자, 생수를 가져왔다”며 비닐봉지를 건넸다. 후쿠시마에서 센다이까지 약 6시간을 달려왔지만 에가와 씨의 배려에 피곤함이 사라졌다.

두 번째 인물은 센다이 시내 임시 피난처인 히가시로쿠반초(東六番町) 초등학교에서 만난 세노 유이코(瀨野結衣子·28·여) 씨. 12일 오후 10시경 센다이에 도착하자마자 임시 피난처부터 찾았다. 당시 센다이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피난처는 깜깜했다. 기자는 초등학교 입구에 서성이고 있던 세노 씨를 시(市) 관계자로 여겨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는 친절히 피난처 구석구석을 안내해줬다. 하지만 알고 보니 세노 씨는 도호쿠(東北)대 박사과정 학생으로 그 역시 피난을 온 것이었다. 그는 “내일(13일)은 별다른 일정이 없다. 원한다면 센다이 시내 취재까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기자는 13일 오전 9시에 피난처에서 세노 씨를 다시 만났고 300여 명의 시신이 발견된 센다이의 해변 마을 아라하마(荒濱)까지 안내를 받았다. 성심성의껏 도와준 덕분에 피해를 본 일본인과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인물은 12일 밤 늦게부터 숙박하기 시작한 프린스호텔의 종업원 사토 사야카(佐藤淸香·31·여) 씨. 센다이 도착 당일 밤늦게까지 피난처를 취재하다 보니 호텔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당시 호텔들은 지진 여파가 계속돼 추가로 손님을 받지 않았다. 밤 12시가 다 돼 호텔 문을 두드리며 사정을 설명하자 사토 씨는 “한국에서 온 기자라면 방을 마련하겠다. 여기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야 어떻게든 거처가 있겠지만 한국에서 왔다면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했다. “일본의 참상을 잘 알려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는 취재하러 갈 지역의 지도를 복사해 줄 뿐 아니라 자세한 설명까지 해줬다. 수몰된 일본인이 5000명 이상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야기 현 오나가와(女川) 정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그곳은 해변이라서 위험할 뿐 아니라 원전이 있어 절대 안 된다. 여진으로 인해 원전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한사코 말리기도 했다. 재난 앞에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 일본인들을 보며 이런 게 바로 국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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