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업고 우뚝 선 ‘브라질의 대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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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당선자 호세프는 누구

브라질 집권 노동당의 지우마 호세프 후보(62)가 자국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AFP통신은 “호세프 후보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치러진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유효투표의 56.0%를 얻어, 44.0%를 득표한 브라질사회민주당 조제 세하 후보(68)를 누르고 당선됐다”고 1일 전했다. 이로써 호세프 당선자는 내년 1월 1일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호세프 당선자는 대선을 관장한 브라질 최고선거법원이 그의 당선을 공식 발표한 직후 수도 브라질리아 중심가에서 지지자 수천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극심한 가난을 뿌리째 뽑겠다. 브라질 국민의 지지를 절실히 요청한다”고 당선 수락 연설을 했다. 외신은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해 그를 대선 후보로 직접 지명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현 대통령(65)의 지지율 80%로 대변되는 높은 인기와 룰라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경제성과에 힘입어 선거에 승리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호세프 당선자는 브라질 동남부 미나스제라이스 주에서 불가리아 출신 이민자인 아버지와 브라질 태생의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브라질이 군사독재에 신음하던 1967년 지하 반정부 게릴라단체인 민족해방지휘부(NLC)에 가입해 마르크스주의에 눈떴다. 1970년 초 헌병대에 붙잡혀 전기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겪다 1972년 말 풀려났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이후 룰라의 노동당에 가입해 지방정부에서 일하다 룰라의 천거로 2003년 브라질 에너지장관에 임명됐고 2005년 우리나라의 총리 격인 수석장관이 됐다.

3월 대선을 위해 공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공개석상에서 장관을 혼쭐내는 단호하고 불같은 성격 때문에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영국 마거릿 대처 전 총리에 빗대 ‘브라질의 대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끼고 헤어스타일도 바꾸며 주름 제거 성형수술을 받는 등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애썼다. 유세 과정에서도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닌 보살피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이웃집 주부 같은 복장과 행동으로 친(親)서민 이미지를 구축해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해는 림프샘암을 앓았지만 항암치료로 회복됐다. 두 번 결혼했지만 모두 이혼했고 지난해 9월 외동딸에게서 첫 손자를 봤다.

중남미 지역은 전체 20개국 가운데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코스타리카의 라우라 친치야 대통령이 여성 정부 수반으로 활약하고 있다. 호세프 당선자는 이들에 이어 세 번째로 현역 통치자로 활동하게 된다.

한편 호세프 당선자는 한국에 상당한 호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한국과 브라질의 외교 통상 투자관계가 강화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사회기반시설-치안 등 현안 산적… ‘룰라 그늘’ 어떻게 벗어날지 관심 ▼
룰라, 정치무대 은퇴 시사


남미 최대국 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될 지우마 호세프 당선자는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게릴라 출신으로 브라질 현대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철강노동자 출신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현 대통령과 종종 비견됐다. 그러나 그의 앞날은 룰라 대통령의 그늘을 어떻게 벗어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승리를 두고 브라질 언론과 외신은 ‘브라질 유권자가 사실상 룰라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 유권자는 “룰라가 대선에 10번 나온다 해도 모두 그를 찍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기간 내내 지지율 고공행진을 보여준 룰라 대통령은 3선 연임을 금지하는 헌법에 따라 후보로 나서지 못했다. 호세프 당선자가 선거운동 기간과 승리 연설에서 룰라 대통령의 중도좌파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자주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당선 수락 연설에서도 “앞으로도 룰라의 사무실 문을 자주 두드리겠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10%포인트 이상 차의 큰 승리가 당선자에게 힘이 되겠지만 룰라 대통령의 업적을 따라잡기엔 난제가 많다고 내다봤다. 당선자 앞에는 전기 도로 교육 건강보험 등 여전히 취약한 사회기반시설 확충과 2014년 월드컵, 2016년 여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살인사건 사망자가 연 5만 명을 넘나드는 치안 문제, 그리고 달러 대비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고평가된 브라질 헤알화 문제 등이 기다리고 있다. 룰라 대통령이 국내외 정치무대에서 보여준 뛰어난 협상능력과 카리스마도 당선자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룰라 대통령은 “내각 구성은 전적으로 당선자의 구상대로 이뤄져야 한다. 전임 대통령이 낄 자리는 없다”며 사실상 정치무대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외교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맡아 국제관계를 책임지거나 2014년에 다시 대선에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지우마 호세프

▽1947년 12월 14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주 출생 ▽1967년 반(反)군사독재 게릴라 단체 NLC 가입 ▽1970년 정부군에 체포 수감·1972년 석방 ▽1986년 룰라의 노동당 가입 ▽2003∼2005년 6월 에너지 장관 ▽2005년 6월∼2010년 3월 수석장관 ▽2010년 4월∼집권 노동당 대통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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