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노동당 새 당수 ‘밀리밴드 형제의 결투’

  • 동아일보

‘형이냐 동생이냐.’

약 3주 앞으로 다가온 영국 노동당 전당대회. 차기 당수직을 놓고 밀리밴드 가문의 두 형제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데이비드 밀리밴드 전 외교장관(45)과 에드 밀리밴드 전 에너지·기후변화 장관(41)이 바로 그들. 석학의 아들, 빼어난 외모, 대조적인 정치관 때문에 벌써부터 형과 아우의 대결에서 누가 노동당의 새 선장으로 뽑힐지 유럽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 형제의 아버지는 마르크스주의의 대가이자 영국 좌파 역사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학자 중 한 명인 랠프 밀리밴드 박사. 두 사람은 모두 런던 출신으로 옥스퍼드대를 졸업했고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게서 정치적 영감을 받았지만 정치 이력과 이념적 성향은 확연히 다르다.

당수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형 데이비드는 카리스마와 엘리트 이미지로 ‘준비된 총리 후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총선에서 노동당이 보수당에 정권을 내준 뒤 곧바로 “노동당을 다시 세우겠다”면서 당수 도전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으로 이어진 전 노동당 정권에서 가장 촉망받는 정치 수재였다.

반면 귀여운 외모의 ‘얼짱’ 동생 에드는 브라운 전 총리가 재무장관 시절 비서를 하면서 정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9세 때부터 노동당의 인쇄 전단을 돌리고 10대 중반에 노동당의 선거 캠페인에 자원봉사를 하는 등 열혈 노동당원의 기질을 보였다.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평이다.

각종 정치 현안에서 둘은 대척점에 섰다. 형 데이비드는 블레어 총리 시절 이라크 전쟁과 영국의 참전을 적극 옹호한 반면 동생 에드는 이라크전을 맹비난했다. 또 데이비드는 영국은 긴축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혀왔지만 동생은 “좌파의 지지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형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뛰어넘어 영국의 중산층을 노동당의 지지층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동생은 “노동당이 진보적 이상을 잃어버렸다”며 중도 좌파를 주축으로 보수-자민 연정에 실망한 계층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에드는 이달 24일자 가디언지에 자민당의 지지자들에게 “노동당으로 오라”는 공개편지를 보냈다.

지지층도 다르다. 데이비드는 의원 그룹과 전통 노동당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고 있다. 반면 에드는 노조의 압도적 후원을 받고 있다. 에드는 지난달 유니슨 등 영국 3대 노조로부터 공개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영국 언론은 데이비드는 블레어의 수제자라는 점이 오히려 아킬레스건이 될 소지가 있고 에드는 좌파 중심의 이념과 정책관이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분석한다. 두 형제의 어머니는 누구 편일까. 그녀는 당수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최초의 흑인 여성 후보인 다이앤 애봇 의원에게 투표하겠다고 했다.

프랑스 주간 렉스프레스는 최근호에서 둘의 한판 승부를 ‘카인과 아벨’의 대결,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싸움으로 비유했다. 9월 22일 전당대회는 당원과 노조원, 하원의원, 유럽의회 의원의 투표로 진행된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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