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아프리카 협력시대]신뢰→개발경험 전수→경협… 한국식 파트너십 검은대륙 사로잡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7일 03시 00분


■ 현장서 지켜본 한국의 對아프리카 협력 로드맵

中 -日과 차별화
자원확보-물량공세와 달리 문화 공유하며 ‘틈새’ 접근

阿의 ‘박정희 열풍’

새마을운동 현지서 큰 관심… 경제협력 기반 구축에 활용


에티오피아 곤다르 지역 보건소에서 활동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인 박정희 씨가 에티오피아의 출산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박 씨 뒤쪽에서는 보건소를 찾은 한 여성이 가족계획을 위한 피임 주사를 맞고 있다. 곤다르=윤완준 기자
에티오피아 곤다르 지역 보건소에서 활동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인 박정희 씨가 에티오피아의 출산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박 씨 뒤쪽에서는 보건소를 찾은 한 여성이 가족계획을 위한 피임 주사를 맞고 있다. 곤다르=윤완준 기자
얼마 전 주에티오피아 한국대사관은 제나위 멜레스 에티오피아 총리 측근으로부터 책 한 권을 구해 줄 수 없냐는 요청을 받아 책을 구해 줬다. 이 책의 제목은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1970년대 대통령경제2수석비서관을 지낸 오원철 씨가 2006년에 펴낸 책이었다. 주콩고민주공화국(콩고민주공) 한국대사관도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델로 삼겠다는 조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 대통령에게 같은 책을 선물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6일 “콩고민주공 에티오피아 세네갈 르완다 우간다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공통점은 1960년대 박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방식에서 21세기 아프리카 국가발전의 모델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경제개발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 국가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우리에겐 자원 및 경제안보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의 기자 세르주 미셸 씨는 2008년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 실상을 파헤친 저서 ‘차이나프리카’에서 “한국은 떠오르는 중국의 경쟁국”이라고 썼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은 걸음마를 막 시작한 단계여서 한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개발경험과 경제협력 시장을 찾아내 차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아프리카 개발·경제협력 로드맵은 ①불신에서 신뢰로→②개발협력 안착화→③경제협력의 인프라 구축→④틈새시장 공략으로 요약된다.

○ 불신에서 신뢰로

지난달 25일 콩고민주공에서 만난 현지 농업부 관계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이달 시작하는 농촌마을 추엔게 개발사업에 대해 “왜 한국이 협정서에 빨리 서명하지 않느냐. 미국과 중국 등 그 협력사업을 노리는 국가가 많다. 한국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당시는 협정서 서명을 불과 2주를 남겨둔 시점이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개발을 빌미로 한 식민 착취를 경험한 아프리카 사람들은 원조 공여국에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냉전시대 아프리카 국가들이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에 이용되면서 생겨난 선진국에 대한 불신도 상당하다.

이에 따라 한국은 문화를 공유하며 진정한 파트너라는 인식, 즉 마음을 얻는 것을 아프리카 협력의 1순위로 삼고 있다.

○ 개발협력 안착화

외교 소식통들은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박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모델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코트디부아르와 세네갈 정부는 한국 정부에 먼저 새마을운동 전수를 요청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개발, 의식개혁(교육), 보건의료 시스템의 개혁으로 집약된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개발에 앞서 국민 의식개혁의 필요성도 절감하고 있다. 콩고민주공 농업부 관계자는 “주민들의 의식은 한국의 1948년 이전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들에게 한국인처럼 근면함과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박 전 대통령 모델을 장기집권의 근거로 악용하려는 의도를 견제하는 것도 한국 외교의 또 다른 과제다.

○ 경제협력 인프라 구축

“식량난 아프리카에 농업기술 전수”… 韓-阿협의체 공식 출범 앙골라, 카메룬 등 아프리카 16개국 농업 관련 장차관들이 6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아프리카 농식품 기술협력협의체(KAFACI)’ 출범식에 참석했다. 농촌진흥청이 주도하는 이 협의체는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는 아프리카 대륙에 한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김재명 기자
“식량난 아프리카에 농업기술 전수”… 韓-阿협의체 공식 출범 앙골라, 카메룬 등 아프리카 16개국 농업 관련 장차관들이 6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아프리카 농식품 기술협력협의체(KAFACI)’ 출범식에 참석했다. 농촌진흥청이 주도하는 이 협의체는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는 아프리카 대륙에 한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김재명 기자
최근에는 개발협력을 넘어 경제협력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순석 주에티오피아 대사는 “한국이 G8을 넘어 G5까지 가려면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개발협력)을 넘어 고기를 함께 잡아야(경제협력) 하지만 한국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성철 주콩고민주공 대사도 “한국 기업은 약간의 위험 요소만 있어도 진출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2006년과 2008년 한-아프리카 경제협력회의(KOAFEC)를 열었지만 아프리카와의 무역 규모는 전체 무역 규모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콩고민주공 정부 관계자는 “사람들은 중국산 짝퉁 삼성 LG 제품이 질이 좋지 않은 점을 알면서도 삼성과 LG 제품을 동경해 짝퉁을 구입한다. 그런데 왜 삼성이나 LG는 우리나라에 진출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콩고민주공은 젖기를 기다리는 마른 스펀지다. 기업들이 오기만 하면 손을 잡고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리스크를 안고 아프리카에 뛰어들기에는 투자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2006년 10억 달러 규모의 아프리카개발기금을 설립했으며 일본도 2008년 일본국제협력은행에 아프리카 투자 배정기금을 설치했다.

○ 틈새시장 공략

한국의 아프리카 경제협력 전략은 국영기업이 리스크를 부담하며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중국식이 될 수는 없다.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정보기술(IT)이 첫 번째 해답”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유선전화는 보급률이 매우 낮은 반면 휴대전화 보급 성장률이 연간 50%에 이른다는 것이다. KT가 르완다에 개설한 와이브로 국가통신망이 성공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아프리카 정부가 한국의 농촌기술을 통해 식량위기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한국식 농업기술 투자도 틈새시장이 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식량안보와도 연계된다.

아디스아바바·킨샤사=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콩고민주共 농업장관 “코리아 농촌개발 경험 배우고 싶다”


조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은 3월 한국을 방문한 뒤 자국에 돌아가 노르베르 카틴티마 농업장관(사진)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왜 우리는 그동안 작물을 대량 재배한 뒤 수출해 성장하는 길을 찾지 않았습니까.”

지난달 25일 현지에서 만난 카틴티마 장관은 이 일화를 들려주며 한국과의 농촌개발협력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이달 콩고민주공 수도 킨샤사의 농촌마을 추엔게에서 7월부터 농업 인프라와 생산성 향상 교육이 통합된 농촌 개발을 시작해 한국의 선진농법을 전수할 계획이다.

카틴티마 장관은 “현재 추엔게 마을의 많은 토지가 경작지로 쓰이지 못하고 잡초만 무성한 상태”라며 “한국인들이 범람하는 콩고 강물을 막아 쌀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콩고민주공의 식량위기에 대처할 힘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콩고민주공이 극심한 식량난에 처한 원인으로 국민의 근면성 부족과 함께 독재 정권 시절 농장의 강제 국유화, 국가가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대신 단숨에 돈을 벌기 위해 광산 개발에 의존한 점, 내전으로 인한 농업용 토지 인프라의 붕괴 등을 꼽았다.

“한국도 전쟁을 겪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공통점이 있더군요. 한국이 전후에 급격히 성장한 힘을 배워 우리 국민에게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킨샤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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