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 최장수 출입기자로 활약하며 브리핑룸 맨 앞줄을 지켜온 전설의 기자 헬렌 토머스 씨(사진)가 자신의 90회 생일을 불과 두 달 앞두고 7일(현지 시간) 전격 불명예 퇴직했다.
1961년 1월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 직후 백악관을 출입한 이래 49년간 지켜오던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은 유대인에 대한 비난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지난달 27일 유대인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행사에 참석했던 한 랍비(유대교 성직자)가 개인용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이스라엘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한다고 하자 토머스 기자는 “팔레스타인에서 썩 꺼지라고 말하라. 자신들의 집인 폴란드나 독일로 가야 한다”고 말한 것. 이 동영상은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그의 인종주의적 발언에 대한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토머스 기자는 공식 성명을 내고 “실언이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토머스 기자의 발언에 대해 “모욕적이며,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도 “변호해줄 도리가 없는 발언”이라고 등을 돌렸고 일부 기자들은 “수십 년간 그에게 제공된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자리는 특혜였다”며 토머스 기자 때리기에 동참했다. CBS의 마크 놀러 기자는 “어느 순간부터 사실 여부를 묻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경우가 많았고 동료 기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토머스 기자는 이날 사의를 표명했고 그의 소속사인 ‘허스트 코퍼레이션’ 측은 “토머스 씨의 사직은 바로 지금부터 유효하다”고 발표했다. 레바논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토머스 기자가 유대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향하는 국제구호선을 공격하는 등 민감한 시기에 나온 공개적인 인종주의 발언을 어느 누구도 감싸주지 못했다.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로 불리며 80세 생일 이후 거의 매년 현직 대통령이 마련한 생일케이크를 받았던 토머스 기자는 90회 생일을 쓸쓸하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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